일러스트=박상훈

지난해 봄 팔순이 넘은 부모님이 연명의료를 받지 않겠다는 의향서에 서명했다는 얘기를 듣고 많은 생각이 교차했다. 자식들에게 알리는 것도 상담 과정에서 교육받은 것 같았다. 그런 결정을 내리기까지 속마음을 헤아려보니 마음이 먹먹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자주 가는 마을회관 등에서 편안하게 임종을 맞고 자식들 부담도 줄이기 위해 꼭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퍼진 것 같았다.

▶연명의료를 얘기할 때 ‘김 할머니 사건’을 빼놓을 수 없다. 연세의료원에 입원한 김 할머니가 뇌 손상을 입어 식물인간 상태가 됐지만 병원은 인공호흡기 등 연명의료를 계속했다. 1997년 가족의 부당한 퇴원 요구에 응한 의료진이 살인 방조죄로 유죄를 선고받은 ‘보라매 병원 사건’ 여파로, 의료계는 ‘최대한 방어 진료’를 하고 있었다. 가족들은 2008년 소송을 제기했고 병원은 대법원까지 끌고가 판례를 받아냈다. 이 대법원 판례는 나중에 중단의 대상·범위 등 연명의료결정법의 틀을 정하는 데 결정적 근거가 됐다.

▶자신의 연명의료 여부를 사전에 선택할 수 있는 제도가 2018년부터 시행된 이후 무의미한 연명의료를 하지 않겠다고 서약한 사람이 빠른 속도로 증가하더니 300만명을 넘어섰다. 아직까지 이렇다 할 큰 부작용도 나타나지 않고 있다. 초고령 사회에 대비한 여러 제도 중 그나마 연명의료제도는 순조롭게 정착하고 있는 것 같다.

▶미국 의사 아툴 가완디가 역작 ‘어떻게 죽을 것인가’에 담고 있는 메시지는 단순하고 명료하다. 무의미하고 고통스러운 연명 치료에 매달리기보다 삶의 마지막 순간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돌아보라는 것이다. 물론 초고령 사회에 아직도 높은 노인 빈곤을 낮추는 일, 아픈 노인을 치료하고 간병하는 일, 고령자에게 적절한 일자리를 제공하는 일은 중요하다. 이런 일에는 지금도 기초연금, 건강보험, 노인 일자리 사업 등 형태로 수십조 원씩을 투입하고 있다. 한 해 사망자가 30만명인데 연명의료에 드는 비용이 한 명당 2000만~3000만원이다. 이런 비용보다 더 중요한 것은 희망이 없는 연명 치료가 환자 본인과 가족에게 불필요한 고통을 안긴다는 점일 것이다.

▶아직 갈 길은 멀다. 300만명이 중요한 성과지만 우리나라 성인 인구의 6.8%에 불과하다. 연명 의료의 법적 기준을 현행 ‘임종 과정’에서 ‘말기’로 범위를 넓혀야 한다는 의견도 적지 않다. 미국·유럽 등 선진국에서 속속 도입하고 있는 의사 조력 자살 문제 등도 본격 논의하게 될 시기가 멀지 않았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