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무게 140㎏의 초고도 비만이던 미국의 흑인 가수 리조는 한때 ‘내 몸 긍정주의(Body Positive)’ 운동의 상징이었다. “뚱뚱하지만 아름답다”고 노래하며 그래미상까지 받았는데, 올해 들어 반쪽이 된 몸으로 등장했다. 사람들은 비만 치료제 위고비에 영혼을 팔았다고 수군댔다. 정치적 올바름(PC)을 지지했던 팬들은 분노했고, 사라진 살과 함께 인기도 증발했다. 발표하는 족족 히트하던 이전과 달리, 리조의 신곡들은 빌보드 차트에서 볼 수 없었다.
▶리조가 말과 행동이 다른 행태로 추락했다면, 반대 사례도 있다. 지금 미국에서 논란 중인 파란 눈의 금발 미녀 시드니 스위니의 청바지 광고다. 의류 브랜드 ‘아메리칸 이글’을 입은 그녀 옆에 이런 문장이 써 있다. “시드니 스위니는 훌륭한 청바지(jeans)를 가졌습니다.” 유전자(genes)와 청바지(jeans)는 발음이 같다. 일각에서 노골적인 백인 우월주의라며 비판했지만, 이 광고 효과는 폭발적이라고 한다. 게다가 시드니는 공화당원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소셜미디어에 ‘엄지척’을 올렸고, 아메리칸 이글은 주가까지 폭등했다.
▶다양성·형평성·포용성(DEI)은 미국 민주당 집권 시절에는 헌법보다 중요한 가치라는 농담까지 나왔던 좌파 문화 전쟁의 상징어였다. 하지만 도를 넘은 데 따른 피로감 때문인지 할리우드가 제작한 흑인 백설공주·흑인 인어공주는 거센 역풍을 맞았다. 급기야 구글의 AI 제미나이가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 이미지로 흑인·여성·아시안까지 생성하자 ‘사실 왜곡’ 비난이 쏟아졌다.
▶그러자 트럼프가 나서기 시작했다. 트럼프는 최근 발표한 ‘AI 행정명령’에서 다양성·형평성·포용성 개념을 알고리즘에 내장한 AI를 연방 기관이 사용하지 못하게 했다. 이른바 ‘워크(Woke) AI’, 한국식으로 비유하자면 ‘깨시민 AI’ 금지 명령이다. 민간 기업이 사용하는 AI는 어쩔 수 없더라도, 연방 정부와 계약하는 AI 기업들은 해당 기준에 부합하는 모델만 납품하도록 강제한다는 것이다. 구체적 가이드라인은 향후 120일 이내에 예산관리국이 확정하도록 했다.
▶미래와 가치를 선점하려는 문화 전쟁이 AI로까지 번졌다. 인공지능은 데이터·알고리즘 설계·활용 방식에 따라 특정 가치관이나 정치적 목적을 반영할 수 있다. AI 시대에 헤게모니 쟁탈전이 벌어질 수 있다는 뜻이다. 사회 전체가 중지를 모으지 않으면 AI는 문제 해결이 아니라 사회 분열의 도구로 추락할 수 있다. 기술만이 아니라 인간과 사회의 합의 능력도 중요하다. 남 일이 아닌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