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이철원

30년 전 미국 올랜도에 있는 디즈니월드를 방문했다가 기념품 매장에서 당시 갓 돌 된 아들에게 줄 미키마우스 인형을 집어들었다. LA 유니버설 스튜디오에선 영화 ‘백투더퓨처’에 등장하는 모형 타임머신 자동차도 샀다. 귀국행 가방에 굿즈들을 넣으며 제조업과 첨단 산업뿐 아니라 문화 산업도 강국인 미국과 굿즈 불모지인 우리 현실이 겹쳐 떠올랐다.

▶일본도 굿즈 강국이다. 일본 여행객은 왼쪽 앞발을 앞뒤로 흔드는 고양이 굿즈 ‘마네키네코’ 한두개쯤은 샀다. 애니메이션 강국답게 다양한 만화 캐릭터도 굿즈로 활용한다. 2008년 아소 다로 당시 일본 총리는 APEC 정상회담에서 메드베데프 당시 러시아 대통령에게 도라에몽 피겨를 선물했다. 임진왜란 때 조선에서 끌려간 도공 심수관 가문의 도자기를 활용한 굿즈는 정말 다양하다.

▶한국은 얼마 전까지도 세계에 내놓을 굿즈가 없었다. 이런 굿즈 빈국 이미지를 깨는 사건이 국립중앙박물관(국박)에서 벌어지고 있다.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케데헌)’ 삽입곡이 세계 음악 차트를 휩쓸자 작품에 나오는 우리 전통 캐릭터인 호랑이, 까치, 갓 등에 관심이 쏟아지면서다. 국박이 작년 선보인 ‘까치 호랑이’ 배지는 지난달에만 7번 품절됐고 지금 예약 주문하면 11월에나 손에 넣을 수 있다. 굿즈를 사기 위해 수백 명이 아침부터 국박 문이 열리기를 기다렸다 뛰어가는 오픈 런도 빚어진다. 이 인파엔 외국인도 가세한다. 7월 내내 작년 동기 대비 두 배를 넘는 69만명이 국박을 찾았다. K굿즈 신드롬도 여기에 일조했다.

▶K굿즈에 대한 관심은 사실 몇 해 전부터 달아오르고 있었다. 2020년 이후 국박의 굿즈 매출이 해마다 30~40%씩 고성장하더니 지난해 처음으로 200억원을 넘어섰다. 외국인 구매 비율도 크게 증가해 2021년 2.1%에서 지난해엔 16.8%가 돼 8배로 늘었다.

▶K굿즈 열풍의 배경엔 전통문화를 고루한 것이 아닌 최신 유행으로 소비하는 젊은이들의 감각이 깔려 있다. K굿즈 소비의 주력은 40~50대 중장년이 아닌 20~30대 젊은층이다. 술잔에 술을 부으면 잔에 새긴 선비 얼굴이 붉게 변하는 ‘취객변색잔’, 화려한 단청 문양을 입힌 데스크톱 자판 등 참신한 K굿즈가 케데헌 돌풍 이전부터 젊은이들 사이에서 인기였다. 11월 미국 워싱턴 스미스소니언 아시아 미술관에서 이건희 컬렉션 특별전이 열린다. 전시작들을 모티브로 제작한 굿즈 38종도 현지에서 선보인다니 K굿즈 열풍이 계속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