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격하기로 악명 높은 한국 국회의 여야 충돌에선 최루탄이 터지기도 하고, 해머와 ‘빠루(노루발 못뽑이)’ 같은 건설 장비가 동원되기도 했다. 이 ‘흉기’들이 등장한 장면들의 공통점이 한미 FTA(자유무역협정)다. 2008년 한나라당이 국회 외통위에 한미 FTA 비준안을 상정하려 하자 민주당 당직자들이 해머를 들고 와 출입문을 부쉈다. 한미 FTA를 저지하겠다며 빠루와 전기톱도 동원했다. 한미 FTA 비준안이 본회의에 상정됐을 때는 민주노동당 김선동 의원이 최루탄을 터트려 본회의장을 눈물바다로 만들었다. 한미 FTA는 온갖 산고를 겪은 끝에 탄생했다.
▶한미 FTA는 ‘경제 영토 확장’을 내건 노무현 정부가 시작했고, 이명박 정부가 이어받아 완성했다.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한미 양국 국회에서 비준안이 통과돼 2012년 3월 발효됐다. 그 과정에서 국회 난동보다 심각한 사회적 후유증도 남겼다. 광우병 파동이었다. 이명박 정부가 한미 FTA의 속도를 내기 위해 미국산 소고기의 수입 조건을 완화하자 일부 언론이 사실과 다른 ‘인간 광우병’ 문제를 보도하면서 한동안 온 나라를 괴담의 소용돌이로 몰아넣었다.
▶한미 FTA는 두 나라에 모두 이익을 안겼다. 한국의 대미 무역 흑자는 2011년 117억달러에서 지난해 660억달러로 늘었다. 발효 후 10여 년간 한국은 연평균 100억달러의 추가 흑자를 얻었다. 우리만 덕본 게 아니다. 발효 후 작년까지 한국이 미국에 투자한 돈이 1300억달러, 미국 진출 한국 기업이 1만5000곳이 넘는다.
▶한미 FTA는 광우병만큼이나 트럼프와도 악연이다. 트럼프는 1기 때 한국을 불공정 흑자국으로 지목하고, 한미 FTA 재협상을 요구했다. 한국 협상팀은 픽업트럭 수출 관세에서 양보하는 등 협상 카드를 내밀어 FTA를 지키는 데 성공했다. 그런데 트럼프 2기에 닥친 ‘관세 쓰나미’는 결국 넘지 못했다.
▶이번 관세 타결로 ‘상호 무관세’가 무너져 한미 FTA가 사실상 무용지물이 됐다. 미국은 여전히 한국에 무관세로 수출하는데, 우리는 15% 이상 관세를 물게 됐다. 그래도 일부 국가가 현행 관세율에 상호 관세율을 추가하는 것과 비교해 우리는 원래 무관세였기에 그나마 FTA 덕을 조금은 봤다. 실질적으로는 효력이 사라졌지만 파기된 것은 아니다. 법적으론 여전히 유효한 조약으로 남아있다. 앞으로 미국 정치 상황 여하에 따라 한미 FTA가 휴면 상태에서 깨어날 수도 있다. 안보 동맹과 함께 한미 관계의 두 기둥을 이뤘던 ‘경제 동맹’이 부활하게 될 날을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