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박상훈

외국인 회사에 다니는 지인이 에어컨으로 인한 고충을 털어놓은 적이 있다. “서양인 동료들이 여름만 되면 사무실을 북극으로 만드는데, 너무 추워 이직을 하고 싶을 정도”라고 하소연했다. 에어컨 온도로 인한 갈등은 사소한 불편이 아니다. 인간관계에 악영향을 주거나 회사 분위기를 망가뜨린다. 몇 해 전 경기도의 한 회사에선 에어컨 온도 문제로 시작된 동료 간 말다툼이 주먹다짐으로 이어져 다치기까지 했다.

▶일반적으로 덩치가 큰 사람이 더위를 더 많이 탄다고 한다. 덩치가 크면 근육량이 많고 기초대사량도 많아 체온이 높기 때문이다. 서양인이 동양인보다 추위를 덜 느끼고 더위를 못 견디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남자와 여자가 좋아하는 온도가 다른 것도 비슷한 이유다. 일반적으로 남자가 여자보다 낮은 온도를 좋아한다. 중국의 한 연구소가 동양인 남녀가 쾌적하게 느끼는 온도를 조사한 적이 있는데 남자는 25.3도, 여자는 26.3도였다. 여자는 임신을 하기 때문에 신체 내 장기가 따뜻한 것을 좋아하도록 진화했다는 연구도 있다.

▶그러나 이런 차이는 어디까지나 일반론이고 개인의 건강이나 체질, 평소 패션 스타일 등에 따라 쾌적하게 느끼는 온도가 저마다 다르다. 여름에 긴팔 와이셔츠와 양복 정장을 고수하며 에어컨 온도를 낮추기도 한다. 이러니 회사의 공조 시설 담당자들은 여름만 되면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할지 모르겠다”고 푸념한다. 산업안전관리공단이 조사했더니 직장인 68%가 사무실 온도에 불만을 갖고 있다고 한다.

▶일본에선 상사가 에어컨 온도를 자기 멋대로 설정하는 것이 직장 내 괴롭힘에 해당한다며 에어컨에 괴롭힘을 뜻하는 허래스먼트(harassment)를 합친 ‘에어하라’라는 신조어가 등장했다. 성희롱을 뜻하는 섹슈얼 허래스먼트 수준으로 에어컨 문제를 본다는 뜻일 것이다. 한국에서도 에어컨 온도로 인한 갈등이 중요한 현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한 기업이 실내 에어컨 위치, 창문과 거리 등에 따라 달라지는 사무실 온도를 조사해 온도 맵(map)을 그려보니 같은 사무실에서도 위치에 따라 2~3도가 달랐다. 직원들에게 온도를 참고해 자리를 골라 앉게 했더니 사무실 온도에 따른 불만이 40% 넘게 줄었다.

 ▶사소한 불만은 USB 미니 선풍기나 쿨링 패드, 무릎 담요를 써서 이겨내야 한다. 이런 물품을 회사 차원에서 제공하는 곳도 있다. 에어컨 온도로 인한 갈등을 완벽히 해결할 방법은 없다. 조금씩 양보하고 서로 배려하며 여름을 견뎌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