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박상훈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가 지난 5월 납을 금으로 바꿨다는 논문을 발표했다. 입자를 빛의 속도로 가속해 충돌시키는 실험을 했더니 납의 일부 양성자가 떨어져 나가면서 금이 됐다는 것이다. 가속기 실험으로 납 원자핵 860억개가 금 원자핵으로 변했다는 발표에 일각에선 “연금술이 현실화됐다”고 흥분했다. 하지만 납이 금으로 된 양이 1조 분의 29g에 불과했고, 금이 된 순간도 100만분의 1초였다는 결과에 헛물을 켰다.

▶이번에는 미 실리콘밸리의 스타트업 기업이 핵융합 기술을 이용해 수은을 금으로 바꿀 수 있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핵융합은 가벼운 원자핵 두 개가 고온·고압에서 하나로 융합되며 막대한 에너지를 내는 반응이다. 핵융합 발전소 효율화를 연구해온 이 회사는 핵융합으로 발전뿐 아니라 금을 만드는 방안을 생각해냈다고 한다. 허황돼 보였지만 파이낸셜타임스 등이 비중 있게 다룰 정도로 학계의 관심을 끌었다.

▶원리 자체는 단순하다. 핵융합로에서 방출되는 고에너지 중성자를 수은 동위원소(수은-198)와 반응시켜 불안정한 수은-197로 전환하는 방식이다. 며칠 지나면 이것의 원자 내부 구조가 금으로 붕괴되면서 안정화된다고 한다. 회사 측은 전력 생산에 영향을 안 주고도 1기가와트급 핵융합 발전소에서 매년 5000㎏ 금을 부산물로 생산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방사능 노출 위험을 감안해 금을 14~18년 별도 보관하면 안전하게 쓸 수 있다고 했다.

▶이 발표에 찬반이 갈리며 뜨거운 논란이 불붙었다. 비판하는 측은 전문가들의 동료 평가를 거치지 않고 발표한 논문이어서 검증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핵융합 발전도 언제 성공할지 모르는 미완의 기술인데 금까지 생산된다니 “투자받기 위한 과장”이란 지적도 나왔다. 반면 과학적 타당성이 있다며 인공 합성 다이아몬드처럼 금의 아성을 허물 것이라고 보는 이들도 있다.

▶설사 성공하더라도 세계의 연간 금 생산량이 3500t인 점을 고려하면 핵융합 발전소 1곳의 연간 5t 생산량은 금 시장에 영향을 끼치지 못할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금만큼 비쌌던 알루미늄이 기술 발달로 대량 생산이 가능해졌던 것처럼, 만약 이번 기술이 구현된다면 금의 희소성이 종언을 맞을지도 모른다. 노다지가 될지, 사기극으로 끝날지 당장 결론이 나진 않을 것이다. 다만 서부 시대 골드 러시처럼 금을 찾아 핵융합 발전에 뛰어드는 기업이 늘어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연금술은 실패하더라도 인공지능 시대 전력 부족을 앞당겨 해결하는 결과로 이어지길 기대한다.

곽수근 논설위원·테크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