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김성규

명연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로 유명한 미국 흑인 민권 운동가 마틴 루서 킹 목사는 타계 57년이 지난 지금도 다인종 사회 미국을 하나로 묶는 정신적 지주다. 인종 평등과 화합을 추구한 그의 삶을 기리기 위해 생일(1월 15일)에 즈음한 매년 1월 셋째 월요일을 국가 공휴일로 기념한다. 미국에서 개인의 생일이 공휴일로 지정된 것은 초대 대통령 워싱턴에 이어 그가 두 번째다.

▶그러나 킹 목사에게는 뜻밖의 어두운 이면이 있다. 1960년대 킹 목사의 활동을 못마땅하게 여긴 미 FBI가 그를 공산주의자로 엮기 위해 수년간 도청했다. 그런데 공산주의 활동 증거는 안 나오고 난잡한 성적 행각이 드러났다. 킹 목사는 기업 후원을 받아 연 워크숍에서 섹스 파티를 했고 유부녀와의 사이에 아이가 있었다. ‘나에게는~’ 연설을 하기 전날 밤에도 호텔 방으로 매춘부를 불러들였다. 린든 존슨 대통령은 녹음 파일을 모두 갖고 있었지만 흑인 사회의 반발을 우려해 공개하진 못했다. 킹 목사에게 공격을 당하면 그가 매춘부들과 나눈 대화 테이프를 들으며 경멸하는 것으로 분을 삭일 뿐이었다.

▶이 역사가 수십 년 만에 갑자기 수면 위로 올라왔다. 트럼프가 킹 목사의 1968년 암살 사건 전모를 담은 FBI 기밀문서 23만장을 21일 공개했다. 트럼프는 1기 집권 때인 2017년에도 ‘킹의 사생활’이란 제목의 20쪽 분량 FBI 기밀문서를 공개한 적이 있다. 그런데 이번에는 차원이 다르다. 미 언론은 트럼프가 이른바 엡스타인 스캔들로 궁지에 몰리자 관심을 돌리기 위해 킹 목사를 끌어들인 것이라고 추정한다.

▶억만장자 금융인이었던 엡스타인은 아동 성폭력과 성매매 혐의로 수감됐다가 2019년 감옥에서 자살했다. 그런데 트럼프가 엡스타인의 생일 때 여자 나체 그림을 직접 그리고 음란한 문구를 넣은 생일 축하 편지를 보냈다는 폭로가 최근 나왔다. 엡스타인의 성 접대 리스트에 트럼프가 포함된 것 아니냐는 추측도 나돈다. 일론 머스크도 “많은 권력자가 그 리스트가 공개되지 않기를 원한다”며 트럼프를 우회 공격했다.

▶트럼프는 궁지에 몰리면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리는 데 능하다. 2016년 대선 TV 토론 당시 민주당 후보였던 힐러리가 그의 잦은 음담패설을 비판하자 “나는 말로만 하지만 당신 남편은 실제로 했다”며 빌 클린턴과 르윈스키의 ‘지퍼 게이트’를 언급했다. 지금까지 트럼프에게 성폭력을 당했다고 주장한 여성만 26명이다. 트럼프 때문에 난데없이 끌려나와 망신당하는 사례가 이번이 끝이 아닐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