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 전 경기도 지역에 작은 병원을 연 어느 의사가 겪은 일이다. 병원 앞 골목 전봇대는 동네 쓰레기장이었다. 주민들이 오가며 쓰레기를 산더미처럼 버렸다. 시청에 여러 차례 민원을 넣어 감시용 CCTV를 설치했다. 쓰레기를 버리려 다가가면 무단 투기를 단속한다는 음성 메시지가 나오고 녹화되는 카메라였다. 며칠 만에 쓰레기 투기는 거의 사라졌다. 공권력이 지켜본다는 것은 이렇게 무서운 것이다.
▶범죄 심리학에 ‘깨진 유리창’ 이론이 있다. 1982년 발표된 이 이론은 도시 변두리에 유리창 하나 깨진 집을 방치하면 행인들이 버려진 집으로 생각하고 돌을 던져 나머지 유리창도 모조리 깨뜨린다는 내용이다. 작은 무질서와 사소한 범죄도 방치해선 안 된다는 뜻이다. 관리와 단속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렇다고 공권력이 무질서와 범죄를 다 단속하기엔 한계가 있다. 그래서 ‘가짜 공권력’도 등장했다. 교통사고 예방 명분으로 전국 도로 곳곳에 등장했던 ‘모형 경찰차’도 그중 하나다. 경남 김해중부경찰서는 6년 전 공원과 골목길 등 3곳에 방범용 순찰차 모형을 설치했다. 그 무렵 충남에선 교통사고 빈발 지역에 ‘경찰 등신대’란 이름의 모형 경찰관도 세웠다. 2000년대엔 전국 주요 도로에 ‘가짜 무인 단속 카메라’(일명 뻥카)도 설치됐다. 이후 “국민을 속인다”는 비판이 일자 경찰은 사과하고 ‘뻥카’ 2400여 대를 폐기하기도 했다.
▶이보다 진화한 형태의 ‘가짜 경찰’이 최근 등장했다. 서울 중부경찰서가 작년 10월 관내 공원 한곳에 설치한 ‘3차원(3D) 경찰관 홀로그램’이다. 2분마다 정복을 입은 홀로그램 경찰관이 나타나 “긴급 상황이 발생하면 경찰이 실시간 출동합니다. 이곳에 CCTV가 설치돼 있습니다”라고 말하고는 사라지는 방식이다. 설치 전보다 공원 반경 내 살인·절도·폭력 등 5대 범죄 발생 건수가 약 22% 줄었다니 효과 만점이다. 중부경찰서는 설치 장소를 더 늘리는 것을 검토 중이라고 한다.
▶이것이 언제까지 효과가 있을지는 알 수 없다. 홀로그램 경찰에 움찔한 범죄자도 익숙해지면 그러려니 할 수 있다. 그래도 공권력이 지켜보고 있다는 사인을 주는 것은 의미가 있다. 몇 년 전 미국에선 허리케인이 휩쓸고 지나간 뒤 약탈범들이 기승을 부렸다. 감시와 통제가 사라지자 눌려 있던 악성(惡性)이 드러난 것이다. 성선설이냐, 성악설이냐는 오래된 철학 화두지만 범죄 예방을 위해선 범죄자의 악한 본성이 언제든지 발현될 수 있다는 최악의 가정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