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울산 반구대 암각화는 신석기 시대 후반에서 청동기 시대 초반에 새겨진 것으로 추정된다. 높이 4.5m, 너비 8m의 절벽 암반에 바다 동물과 육지 동물, 사냥 그림 등을 빼곡히 새겼다. 북한 금강산 주요 바위마다 김씨들 찬양 글이 새겨져 있다. 우리 계곡 바위에도 이름들이 새겨져 있다. 돌에 무언가를 새기는 것은 인간의 본능에 가까운 것 같다.
▶국회에는 한때 ‘국민과 함께하는 민의의 전당’이란 글을 새긴 7m 높이의 돌이 있었는데 모양이 흉측하다는 말이 많았다. “여의도는 궁녀들의 화장터로 음기가 센 곳이어서 정쟁이 끊이지 않는다. 이를 누르기 위해 남근석 비슷한 것을 가져다 놓은 것”이란 소문이 돌았다. 결국 이 돌은 눈에 띄지 않는 곳으로 치워졌다.
▶치워졌던 돌이 원래 자리로 돌아오는 경우도 있다. 국정원은 17일 원훈을 과거 김대중·노무현 정부에서 쓰던 ‘정보는 국력이다’로 바꾸고, 원훈석도 김대중 전 대통령 친필로 새긴 것을 재활용한다고 밝혔다. 한국 국정원은 세계에서 원훈을 가장 자주 바꾸는 곳이다. 1961년 중앙정보부 탄생 때의 ‘우리는 음지에서 일하고 양지를 지향한다’를 시작으로 무려 6차례 바꿨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거의 바꿨다. 간첩 출신이 쓴 글을 국정원 원훈석이라고 가져다 놓은 적도 있었다.
▶돌에 새기는 것은 오랫동안 잊지 않겠다는 뜻이다. 세계 최고 정보기관 이스라엘 모사드 본부에는 ‘지략이 없으면 백성이 망하고, 지략이 많으면 평안을 누린다’는 성경 잠언의 구절이 새겨져 있다. 미국 CIA는 요한복음에 나오는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를 모토로 쓰고 있다. 이들이 이 모토를 바꿨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다. 모사드가 수년간의 휴대폰 공작으로 헤즈볼라를 궤멸시키고 이란을 자기 집 안방처럼 드나들며 무력화하는 귀신 같은 모습을 보았다. 우리 국정원은 그 10분의 1의 능력도 안 되면서 원훈은 참으로 잘 바꾼다. 신임 국정원장의 생각과 경력을 보면 차라리 원훈을 ‘우리는 남북회담을 지원한다’고 하면 어떨지 모르겠다.
▶원훈석은 돌 가격만 1억~2억원 정도라고 한다. 국가 재산이니 함부로 버릴 수 없다. 과거 정부에서 썼던 원훈석들은 지금도 국정원에 남아있다. 산책로 주변 눈에 잘 띄는 곳에 있다고 한다. 다음 정권은 지금 바꾼다는 원훈석을 치우고 이 중 다른 하나를 또 가져다 놓을 가능성이 있다. 그 정성의 10분의 1만이라도 간첩을 잡고 주변 위협국들의 동향을 탐지하는 데 썼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