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양진경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K팝 데몬 헌터스’의 열기가 뜨겁다. 방영 일주일 만에 미국 포함, 세계 41국에서 영화 부문 1위에 오른 뒤 음악으로 불씨가 옮겨붙었다. 한 앨범의 OST 총 12곡 중 7곡이 빌보드 핫100에 동시 진입한 것. 모두 영화 속 가상의 보이·걸그룹이 부른 노래들이다. K팝 최고의 스타인 현실의 ‘방탄소년단’ ‘블랙핑크’도 해보지 못한 기록이다.

▶K팝을 소재로 하고 있지만, 이 영화의 국적은 한국이 아니다. 한국계 캐나다인 매기 강이 감독, ‘스파이더맨’으로 이름난 소니픽처스가 제작사다. 한마디로 미국 자본의 할리우드 영화란 뜻이다. 하지만 작품 속 주인공인 3인조 걸그룹 ‘헌트릭스’와 5인조 보이그룹 ‘사자보이스’는 밤의 동숭동 낙산공원 성곽길을 걸으며 대화하고, 김밥과 컵라면에 사족 못 쓴다. 감독은 자신의 창작 전략을 ‘최대한 한국적으로’라고 설명했다.

▶매기 강 감독이 해외 언론 인터뷰에서 사용했던 말이 ‘코리아니즘’이다. 감독은 “미국 자본과 영어로 만들었지만 문화적으로는 100% 한국 영화”라고 설명하면서, “한국의 정서를 창작의 중심에 두고 이를 글로벌 대중문화의 언어로 풀어내는 세계관이 코리아니즘”이라고 했다. ‘BTS’ ‘기생충’ ‘오징어 게임’ 등 한국 창작자·한국 제작자의 성과를 한류 1단계라 명명한다면, 외국 창작자·외국 제작자의 ‘코리아니즘’은 그다음 단계인 셈이다.

▶1억5000만장의 음반을 판 미국의 브루노 마스가 블랙핑크의 로제와 한국식으로 ‘아파트’를 열창하는 세상이다. 라우브와 할시 등 미국 인기 가수들은 아예 자신의 신곡을 한국어로 부른다. 패션지 보그는 한국의 미감(美感)을 주제로 실험적 비주얼 특집을 선보이기도 했다. K문화 열풍이 없었다면 존재하지 않았을 사업 모델도 있다. 필리핀 최대 외식 기업인 졸리비는 최근 한국의 ‘컴포즈 커피’와 ‘노랑통닭’을 인수한 뒤 동남아 현지에서 BTS의 V(김태형)와 배우 차은우를 모델로 썼다. 현지의 한류 열풍을 앞세운 M&A이자 수익 극대화 전략인 셈이다.

▶유럽의 일본 문화 열풍을 상징하는 ‘자포니즘(Japonism)’은 “19세기 후반 서구 미술계에 일본 미술·공예의 영향이 유행처럼 번진 현상”이란 뜻의 전문 용어로 옥스퍼드 사전에 등재됐다. ‘코리아니즘’은 아직 그 정도는 아니다. “한국어에서 유래된 표현이나 한국적 특성”을 뜻하는 일반명사다. 하지만 지금 기세라면 세계 문화의 한 갈래 트렌드를 지칭하는 용어로 자리 잡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