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박상훈

‘억만장자의 여름 캠프’로 불리는 선밸리 콘퍼런스가 올해도 미국 아이다호주 휴양지 선밸리에서 열렸다. 2002년부터 매년 참석하다 사법 리스크로 불참했던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도 9년 만에 다시 행사장에 모습을 나타냈다. 1983년 뉴욕의 부유층 전문 투자업체인 ‘앨런&컴퍼니’가 대기업 CEO와 금융인·정치인·언론인 등을 초대해 연 비공개 회의가 시초다.

▶참석자 면면만 봐도 단순한 휴양지 모임은 아니다. 올해는 팀 쿡(애플), 샘 올트먼(오픈AI), 앤디 재시(아마존), 밥 아이거(디즈니), 메리 배라(GM) 등이 참석한다. 마크 저커버그(메타), 빌 게이츠(마이크로소프트), 제프 베이조스(아마존) 등 ‘단골’들은 올해 불참했다. 참석자들은 가벼운 복장으로 토론을 벌이고 산책·골프를 하며 며칠을 함께 지낸다. 글로벌 비즈니스를 움직이는 초엘리트들이 편안한 대화를 통해 미래 통찰력을 교환하는 기회다.

▶실제 매년 이 자리에서 천문학적인 기업 인수·합병(M&A)은 물론 미래 투자의 물줄기를 바꾸고, 새로운 기술 표준을 만들어 가는 논의가 이뤄진다. 제프 베이조스의 워싱턴포스트 인수, NBC 유니버설과 컴캐스트의 합병 논의 등도 여기서 시작됐다. 스마트폰을 둘러싼 삼성과 애플의 세기의 특허 소송도 2014년 이곳에서 이재용 회장과 팀 쿡 애플 CEO가 만나 해법을 찾아냈다.

▶글로벌 엘리트들의 모임은 스위스 다보스 포럼이나 중국 보아오 포럼 등도 있지만 선밸리 콘퍼런스는 제한된 소수의 초엘리트에게만 문호가 열린 폐쇄성 때문에 더 유명하다. 선밸리처럼 ‘숲속의 밀담’이라 불리며 베일에 싸여 진행되는 행사는 또 있다. 1954년부터 북미와 유럽의 정치·경제·미디어 등의 유력 인사들이 모이는 빌더버그 회의, 구글의 공동 창업자인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이 매년 여름 이탈리아 시칠리아에서 주최하는 구글 캠프도 유명하다. 미국 전현직 대통령, 고위 관료, 기업 CEO 등이 참석하며 훨씬 더 극비리에 진행되는 보헤미안 그로브(Grove)도 있다.

▶이런 행사들엔 ‘미래를 사고파는 사교 클럽’이라는 별칭이 붙는다. 가장 큰 특징은 ‘비밀’이다. 공개되지 않기에 참석자들은 자유롭고 솔직한 대화를 나눈다. 이 때문에 글로벌 사회를 뒤에서 조종하는 ‘그림자 내각’이란 음모론도 따라다닌다. ‘음모’는 아니더라도 실제로 여기서 세계의 방향을 바꾸는 흐름이 형성될 수도 있을 것 같다. 참석자들이 미래의 나침반을 찾기 위해 무엇을 묻고 무슨 대답을 하는지 궁금하다. 우리 기업인들도 더 많이 초청받았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