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이철원

몇 해 전 호주에 파견 나간 회사원이 아이를 전학시키기 위해 현지 초등학교 교장과 면담했다. 한국인이라고 하자 교장은 대뜸 “아이 혼자 등교시켜선 안 되고 하교 때도 부모나 가이드가 오지 않으면 아이를 내어주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교장이 “한국 부모는 아이를 학교에 혼자 보내고 외출할 때도 아이 혼자 두고 나가던데 여기서 그랬다간 아동 학대로 경찰서에 갈 수 있다”고 말하는데 얼굴을 못 들겠더라고 했다.

▶한국인은 아이를 혼자 두는 것이 범죄란 인식이 약하다. 몇 해 전 해외여행을 갔던 법조인 부부는 자녀를 20여 분 남짓 차에 두고 쇼핑 센터에 들렀다가 현지인 신고로 체포돼 벌금을 물었다. 미국에서 홀로 아이를 키우던 한인 여성이 밤에 일하러 나간 사이 넘어진 옷장에 아이가 깔려 숨진 일도 있었다. 엄마는 “내가 아들을 죽였다”고 한국식으로 자책했다가 자백 증거로 인정돼 중형을 선고받았다. 문화적 차이에서 비롯된 표현임이 인정돼 훗날 감형됐지만 끝내 무죄는 아니었다. 아이를 홀로 두고 나간 것과 문을 밖에서 잠근 것 등이 용납되지 않았다.

▶많은 선진국이 아동 방임을 무겁게 처벌할 뿐만 아니라 혼자 둬선 안 되는 구체적인 상황과 연령대까지 꼼꼼하게 정하고 있다. 8~9세 아동은 초저녁까지만 최장 1시간 30분간 혼자 있을 수 있고, 심야에는 이 기준을 더 엄격하게 적용해 혼자 있는 것 자체를 허용하지 않는 식이다. 미국 워싱턴주는 우리 기준으론 다 큰 아이인 만 15세 아동도 보호자 없이 종일 방치하면 최고 10년 형에 처할 만큼 무겁게 처벌한다. 우리는 이런 규정 자체가 없다.

▶부산의 한 아파트에서 부모가 집을 비운 사이 불이 나 어린 자매가 숨졌다. 열흘 전에도 다른 자매가 비슷한 화재로 숨졌다. 이런 비극이 해마다 반복된다. 대개 심야 시간대이고 부모가 일하러 나간 사이에 벌어지는 것까지도 비슷하다. 어른이라면 충분히 피할 수 있는 화재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해 어린이들이 목숨을 잃으니 더 안타깝다.

▶아이 방임을 법으로 다스리는 한편으로 맞벌이 부부나 혼자 아이를 키우는 부모가 일하러 나갈 때 자녀를 맡길 수 있는 시설 확충에도 나서야 한다. 모든 아이는 우리의 아이라는 사회적 공감대도 절실하다. 아이가 혼자 집에 있는 것을 보고도 신고하지 않은 이웃을 처벌하는 나라도 있다. 미국 하교 시간 초등학교 주변은 마치 비상 사태인양 모두 조심하고, 스쿨버스 추월은 큰 벌칙을 당한다. 우리도 인식을 바꾸고 비상한 각오로 나서면 더 이상의 비극은 막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