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맛이 귀했던 시절, 동네 뒷산에 꽃이 피면 친구들과 무리 지어 돌아다니며 꽃을 빨곤 했다. 그러다가 꽃 속에 숨어 있던 벌에게 손이며 입을 쏘였지만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꿀벌의 독은 모질지 않아서 잠깐 붓고 쓰라리다 가라앉았다. 몇 해 전 허리를 다쳐 봉침(蜂針) 치료를 받았다가 벌 독의 위험을 체감했다. 처음에는 허리 아픈 게 주는 듯하더니 여러 번 침을 맞자 온몸의 피부가 빨갛게 부어오르며 몹시 가려웠다. 벌 독 알레르기였다.
▶벌 독에 포함된 40여 가지 성분은 야누스처럼 두 얼굴을 가졌다. 멜리틴·아파민·히스타민 등은 천연 항암·항염·항균·항바이러스제이고 면역 기능도 조절해 준다. 그러나 알레르기가 있는 사람에겐 구토와 설사, 현기증을 유발한다. 특히 급성 알레르기 반응인 아나필락시스를 유발하면 저혈압과 호흡곤란을 겪다가 전신 쇼크나 심장마비로 사망할 수 있다. 벌에 쏘인 위치도 중요하다. 머리, 특히 입속을 쏘이면 목구멍이나 혀가 부어 기도가 막히고 심하면 심정지에 이른다.
▶꿀벌 수는 전 세계에서 감소하는 추세다. 학계에선 2006년 이후 지금까지 약 40% 급감했으며, 이는 기상이변과 살충제 남용, 전자파 공해 등으로 벌이 벌집으로 못 돌아가 빚어지는 현상으로 추정한다. 그런데도 벌 쏘임 사고는 해마다 늘고 있다. 지난해 1월부터 7월 말까지 국내에서 신고된 것만 2815건이었다. 전년 대비 40% 급증한 수치다. 소방 당국은 대부분 벌 쏘임을 말벌의 소행으로 본다.
▶말벌 침의 독성은 꿀벌 550마리를 합친 것만큼 강력하다. 꿀벌 침은 몸에 박히는데 침을 찌를 때 내장이 딸려 나오며 죽는다. 반면 말벌은 50번 이상 찌른다. 침 길이가 6㎜나 돼 깊이 찌르고 쏟아내는 독의 양도 많다. 코브라처럼 독을 분사하기까지 한다. 꿀벌 침은 신용카드로 살살 밀면 뽑을 수 있지만 말벌에 쏘이면 바로 항히스타민제를 먹고 병원에 가는 것이 좋다. 흉포한 곤충이다 보니 말벌집은 발견하는 대로 제거해야 한다. 화염방사기는 물론이고 최근에는 드론에 총을 달아 전분 가루를 뭉쳐 만든 총알을 쏴서 말벌집에 구멍을 낸 뒤 살충액을 분사하는 방법이 쓰인다.
▶인도의 한 기업인이 영국에서 폴로 경기를 하다가 입에 들어온 벌에 쏘여 목숨을 잃었다. 벌의 종류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입안을 쏘인 것이 치명적이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한국도 벌 쏘임 안전지대가 아니다. 산에 묘를 쓰는 문화 때문에 벌초하다가 벌에 쏘인다. 그로 인한 사망도 연간 10건 안팎에 이른다니 조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