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박상훈

미식축구 스타 O J 심슨이 전처를 살인하고도 무죄 평결을 받은 것은 인종차별 여론 몰이와 증거 부실을 파고든 결과였다. ‘증거 부실’에 결정적 역할을 한 것이 장갑 사이즈였다. 경찰은 사건 현장에서 발견한 장갑과 같은 짝의 피 묻은 장갑을 심슨 집에서 발견하고 그를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했다. 검찰은 1995년 재판정에서 심슨에게 배심원단 앞에서 이 장갑을 껴보라고 했다. 그런데 심슨 손은 장갑에 잘 들어가지 않았다. 심슨의 변호인은 “맞지 않으면 무죄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아무리 지능적인 범인이라도 범죄 현장엔 여러 흔적을 남기기 마련이다. 특히 발자국이 그렇다. 몇 년 전 ‘청담동 주식 부자’ 부모 살인 사건의 범인을 찾아낸 결정적 단서는 운동화 자국이었다. 경찰은 사건 현장에서 발자국을 수집해 신발 종류와 사이즈를 알아냈다. 같은 신발이 많아 DNA 분석이나 지문처럼 범인을 특정할 수는 없지만 용의 선상에 오른 인물을 좁히는 데는 상당히 효과적인 수사 방법이다. 경찰은 유통 중인 신발 밑창과 바퀴 모양 8만여 개를 DB화해 발자국 분석을 전보다 수월하게 하고 있다. 신발은 여러모로 그 주인과 관련이 깊은 생활용품이다.

▶박목월은 시 ‘가정’에서 ‘내 신발은 십구 문 반(十九文半)’, ‘육 문 삼(六文三)의 우리 막내둥아’라고 했다. 저마다 크기가 다른 ‘아홉 켤레 신발’에 9명의 가족애를 담은 것이다. 과거 문 밖에 나란히 놓인 다른 크기 신발들은 오순도순 가족을 떠올리게 하는 모습이었다.

▶요즘 또 다른 신발 크기가 수사와 관련된 문제로도 화제가 되고 있다. 검찰이 건진법사 전성배씨가 ‘김건희 여사 선물용’으로 건넨 샤넬 가방 2개가 샤넬 가방 3개와 신발 1개로 교환된 것을 파악했다. 검찰은 신발의 행방과 크기에 주목하며 이 신발이 김 여사의 신발 사이즈와 같다면 김 여사가 선물 교환을 지시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이 때문에 ‘신데렐라 수사’라는 말도 나온다.

▶신데렐라의 유리구두는 사이즈가 맞아서 해피엔딩이었지만 이 경우는 반대가 될 것 같다. 만약 사이즈가 맞는다면 결정적 증거는 안 된다고 해도 시중의 의구심은 더 커질 듯하다. 문재인 전 대통령 부인 김정숙 여사가 입은 ‘샤넬 재킷’이 즉시 반납됐는지가 논란일 때도 옷 사이즈가 김 여사에게 맞는지가 초점이었다. 전직 대통령 부인들이 이런 일에 휘말려 구설을 타고 이제 검찰 조사에서 신발 사이즈까지 문제가 되고 있다. 한숨 쉬는 국민이 적지 않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