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김성규

1865년 5월 23일 오전 9시, 미국 의회 부근에서 예포가 울렸다. 남북전쟁이 북군(연방군) 승리로 끝난 것을 축하하는 열병식 시작을 알리는 소리였다. 조지 미드 장군이 보병·기병·포병 등 약 8만명을 이끌고 백악관 쪽으로 행진했다. 앤드루 존슨 대통령, 율리시스 그랜트 장군, 윌리엄 셔먼 장군 등이 사열대에서 이들을 맞았다. 이틀 동안 열린 열병식에는 군인 14만5000명이 참가했다. 이후 미국의 열병식은 제1·2차 세계대전이나 걸프전 같은 주요 전쟁 승리를 축하하기 위해 열렸다.

▶전쟁에서 승리한 군이 시가지를 행진하거나, 왕이 병사들을 도열시켜 위세를 보여주는 일은 고대부터 있었다. 비용이 많이 들어 현대 민주국가에서는 빈도와 규모가 줄었다. 영국에서는 매년 국왕의 생일을 축하하는 근위병들의 퍼레이드가 열린다. 프랑스도 매년 바스티유 데이(7월 14일)에 열병식을 한다. 파리 시민들이 탄약고가 있는 바스티유 감옥을 습격해 혁명의 도화선을 당긴 날을 기념하는 것이라 ‘시민의 힘’을 보여주는 의미가 있다.

▶근대 열병식의 역사는 독일을 빼놓고 말할 수 없다. 곧게 편 다리를 높게 들어 올리며 걷는 ‘거위 걸음’은 18세기 프로이센 군대에서 처음 도입했다. 나치 독일도 이를 이어받았다. 히틀러가 50번째 생일을 맞은 1939년 4월 20일, 베를린 거리는 나치의 표상인 하켄크로이츠 깃발과 거위 걸음을 하는 군인들로 채워졌다. 대규모 열병식을 선전에 이용한 것은 나치와 싸웠던 소련도 마찬가지였다. 북한 김씨 정권도 이를 보고 배웠을 것이다.

▶14일 워싱턴DC에서 1991년 걸프전 승리 퍼레이드 이후 34년 만에 대규모 열병식이 열렸다. 미 독립전쟁 중인 1775년 6월 14일 미 육군 창설을 의결한 지 250주년이 된 것을 기념하는 행사였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79번째 생일(6월 14일)과 정확히 겹치면서 ‘독재자 스타일’이란 구설을 낳고 있다. 미 육군 창설 200주년 때도 대규모 열병식은 없었다. 이번 열병식은 비용도 4500만 달러(약 615억원)나 들었다. 미 전역에서는 ‘대통령은 왕이 아니다’(No kings)란 구호를 내세운 반(反)트럼프 시위가 열렸다.

▶트럼프는 2017년 바스티유 데이 행사를 본 후 줄곧 열병식을 원했다. 집권 1기 때는 매티스 국방 장관이 “차라리 독극물을 마시겠다”면서 말려 단념시켰다. 당시 폴 셀바 합참 부의장은 트럼프에게 열병식은 “독재자들이 하는 것”이라고 직언했다고 한다. 지금은 직언하는 사람이 있기는 한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