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10월 워싱턴포스트가 한인과 히스패닉 사이에 ‘예상치 못한 경제 동맹’이 형성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미국 내 한인 소상공인들은 수퍼마켓, 식당처럼 노동력은 많이 필요하지만 이익이 작은 사업을 많이 한다. 이 한인들이 급증하는 히스패닉 노동력에 의존하며 일자리를 통해 서로 섞이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한국 식료품점 사장이 “그라시아스(고맙다)” 같은 스페인어를 배우고, 히스패닉 직원은 “배추” “만두” 같은 한국어를 익히며 몇 년째 함께 일하는 사례 등이 소개됐다.
▶18년이 지난 지금도 이 동맹은 진행 중이다. 한인 식당 주방, 한인 마트 계산대에는 히스패닉 직원이 흔히 있다. 한인 미용실에 가도 히스패닉 종업원이 머리를 감겨 준다. 한인 이삿짐 업체를 불러도 히스패닉 인부가 짐을 나른다. 히스패닉 직원들이 “가족이나 마찬가지”라고 하는 한인도 있다. 히스패닉이 많이 사는 주(州)로는 캘리포니아, 텍사스, 뉴욕, 뉴저지 등이 꼽힌다. 한인들도 많이 사는 곳이다. 지난해 UCLA 연구에 따르면, 아시아계와 히스패닉의 혼혈도 지난 20년 새 2배 늘었다.
▶고대 로마 제국은 스페인이 있는 이베리아반도를 ‘히스파니아’라 불렀다. ‘히스패닉’은 거기서 유래한 말로, 원래 ‘스페인 또는 스페인어 사용 국가 출신’이란 뜻이다. 그런데 중남미 국가 대부분이 스페인어를 쓰다 보니, 중남미 출신 미국 이민자의 통칭이 됐다. 포르투갈어를 쓰는 브라질이나 프랑스어를 쓰는 아이티 출신 이민자는 사실 히스패닉이 아니다. 그래서 요즘 미국에서는 사용 언어와 무관하게 중남미 출신을 아우르는 ‘라티노’란 말이 많이 쓰인다.
▶지난해 미 통계청은 히스패닉이 약 6520만명으로 미국 인구의 19.5%라고 발표했다. 20여 년 새 약 3000만명 늘었다. 2003년엔 흑인 인구도 넘어섰다. 이민자가 계속 유입되기도 하지만, 가족을 중시해 아이를 많이 낳기 때문이다. 히스패닉이라면 흔히 갈색 피부와 탄탄한 체격을 떠올린다. 하지만 여러 인종이 섞여 살아온 중남미 출신 이민자의 외모는 다양하다. 2021년 한 여론조사에 응한 히스패닉의 58%는 자신이 ‘백인’이라고 했다. 피부색이 그렇다는 것이다.
▶트럼프 행정부의 불법 이민자 단속과, 그에 맞서는 히스패닉들 시위가 모두 강경해지며 한인 업체들도 피해를 보고 있다. 체류 자격이 불확실한 히스패닉 종업원들이 출근을 못 해 영업이 어려워진 가게도 많다고 한다. 그래서 시위에 동참한다는 한인도 있다. 불법 이민을 다 받아들일 수도 없을 테니 참 어려운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