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박상훈

조선 후기 화가 겸재 정선과 문인 사천 이병연은 서울 서촌에서 태어나 평생 절친한 벗으로 지냈다. 사천이 시를 쓰고 겸재가 그림을 그려 시화집도 함께 냈다. 1740년 타지에 부임하게 된 사천이 벗과의 잠시 이별을 아쉬워하는 시를 썼는데 남녀 간 연서처럼 애틋했다. ‘자네와 나는 합쳐야(중략) 하는데 그림 날고 시 떨어지니 둘 다 허둥대네.’ 남자들끼리 나누는 각별한 우정을 요즘 유행어로 ‘브로맨스’(brother와 romance의 합성어)라 하는데 둘이 그런 관계였다.

▶브로맨스란 말이 유행하기 전에도 남자들의 우정은 특별 대접을 받곤 했다. 유비·관우·장비의 도원결의로 시작하는 소설 삼국지연의는 우정을 지키기 위해 목숨마저 던지는 세 남자의 브로맨스가 주요 테마다. 가수 김민우는 ‘휴식 같은 친구’에서 자기 애인이 ‘남자들만의 우정이라는 것이 어떤 건지 궁금해한다’고 자랑하듯 노래했다.

▶현실에선 파탄 난 브로맨스 사례가 넘친다. 중국의 마오쩌둥과 류사오치는 겸재와 사천처럼 같은 고향에서 태어나 공산 혁명 성공을 위해 생사고락을 같이한 평생 동지였다. 하지만 정치적으로 맞서게 되자 마오는 류사오치를 죽음으로 내몰았다. 미국 언론인 해리슨 솔즈베리는 저서 ‘새로운 황제들’에서 ‘마오와의 관계에서 가장 위험한 것은 그의 가까운 동료가 되는 것’이란 말로 황제 마오와는 친구가 될 수 없다고 했다. 러시아 혁명의 동지였던 트로츠키와 스탈린도 브로맨스로 시작해 스탈린 손에 트로츠키가 암살당하는 파국으로 끝났다. 생전의 트로츠키는 “스탈린의 눈엔 우정이 없다”며 그를 경계했다.

▶트럼프 미 대통령과 머스크 테슬라 CEO 간 불화가 점입가경이다. 트럼프는 지난 대선 때 거액의 정치자금을 지원한 머스크를 ‘퍼스트 버디(buddy·친구)’라고 치켜세웠다. 하지만 머스크가 자신의 대규모 감세 법안에 반대하자 돌변했다. 머스크를 향해 “미쳤다”고 했고 “테슬라에 주던 정부 보조금을 끊겠다”고 위협했다. 머스크도 “배은망덕하다”며 ‘트럼프를 탄핵하라’는 소셜미디어 글에 좋아요를 눌렀다. 미 언론은 ‘둘의 관계가 붕괴했다’고 썼다.

▶미국의 한 대학에서 친구가 되는 데 필요한 시간을 연구했더니 ‘진정한 벗’이 되려면 적어도 300시간이 필요한 것으로 나타났다. 300시간을 붙어 있으면 서로 좋아하는 것 외에 인간적 약점까지도 알 수 있게 된다. 그러고도 좋아할 수 있어야 진짜 친구라는 것이다. 트럼프와 머스크는 잠시 동지였는지는 몰라도 처음부터 친구는 아니었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