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린 골프의 시초는 골프 클럽 제조사들이 만든 골프 시뮬레이터였다. 비거리, 탄도 등 신제품 품질 점검을 위한 용도로 개발됐다. 스윙 궤도, 헤드 속도, 볼의 비행 각도 등을 그래프나 텍스트로 보여줬다. 컴퓨터 기술과 함께 디스플레이 기술도 발전하면서 고화질 영상으로 보여주는 기능이 추가돼 골프 연습용, 레슨용으로 용도가 확장됐다.
▶1990년대 외국산 골프 시뮬레이터는 대당 가격이 1억원이 넘을 정도로 비쌌다. 한국에선 일류 골프 연습장이나 특급 호텔 헬스클럽에서나 볼 수 있었다. 대학에서 기계공학을 전공한 삼성전자 부장 출신 김영찬씨가 국산화에 도전했다. 그때 나이가 54세였다. 외국 장비를 사서 뜯어봐야 하는데 돈이 없었다. 골프 연습장 레슨 코치에게 통사정했다. “손대지 않고 보기만 하는 조건”으로 영업이 끝난 새벽 2시부터 연구를 했다. 2년여 악전고투 끝에 2001년 12월 시제품을 완성했다. 매출 1조2700억(2024년 기준) 기업 골프존의 시작이다.
▶골프존은 골퍼의 스윙을 녹화, 반복해 보여주는 기술, 실제 골프장을 옮겨 놓은 듯한 고화질 영상, 움직이는 스윙 플레이트 등 차별화된 신기술을 속속 선보이며 ‘스크린 골프’라는 세상에 없던 산업을 만들어냈다. 지난해 스크린 골프를 즐긴 횟수가 1억 라운드를 넘었다. K골프방은 53국에 수출돼 ‘글로벌 놀이 문화’로도 자리 잡았다.
▶“내가 잘 알고, 좋아하고 세상에 도움이 되는 일이 뭘까?” 골프를 좋아했던 김 회장은 20여 년 전 골프, 인터넷, 정보기술(IT), 네트워크 등의 창업 키워드를 조합하다 ‘스크린 골프’를 떠올렸다고 한다. 그는 “거리가 짧으면 1~2타 손해 보지만, 방향이 틀리면 3~4타를 한꺼번에 잃는다. 기업 경영이나 골프나 거리보다 방향성이 훨씬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는 고비용, 장시간 소요 등 필드 골프는 한계가 있는 데다 IT가 혁명적으로 발전하고 있어 스크린 골프 잠재력은 무궁무진하다고 자신한다.
▶미국 골프 전문지가 ‘아시아 골프 산업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1위로 골프존 김 회장을 3년 연속 선정했다. 골프존은 지난해 중국 톈진에 세계 최대 스크린 골프장 ‘시티골프’를 열었다. 티샷부터 어프로치까지는 스크린에서, 그린 플레이는 실제 그린에서 진행한다. 골프존은 필드 골프장 18홀 전체에 카메라, 센서를 설치해 골퍼 자신이 매 홀 라운딩 상황을 스마트폰 앱으로 확인할 수 있게 하는 프로젝트도 추진 중이라고 한다. 골프와 IT의 접합이 어디까지 갈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