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85년 프랑스 국왕 루이 16세가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 중 한 사람인 벤저민 프랭클린 주프랑스 공사에게 408개의 다이아몬드와 금으로 장식된 담배 상자를 선물했다. 유럽 왕실에선 흔한 일이었지만, 프랭클린은 난처해졌다. 미 헌법 전신(前身)인 연방규약에 ‘의회 동의 없이 어떤 왕, 왕자, 외국 정부로부터도 선물을 받으면 안 된다’는 조항이 있어서였다. 의회가 ‘거절하면 프랑스 왕을 난처하게 만들 수 있다’며 동의해 주고서야 논란이 가라앉았다.
▶1945년 윈스턴 처칠 영국 총리가 100파운드, 요즘 돈 1000만원쯤 되는 향수를 선물로 들고 사우디에 갔다가 머쓱해졌다. 사우디 국왕은 보석 장식된 장·단검과 다이아몬드 반지, 화려한 의상을 줄줄이 내놓았다. ‘군주’가 외교를 하던 시절엔 이게 기본이었다. 오스만 제국의 이집트 총독이자 이집트 마지막 왕조를 창건한 무함마드 알리 파샤는 프랑스 국왕에게 룩소르 신전의 3000년 넘은 오벨리스크를 선물로 보냈다. 운송비만 요즘 돈 200억원 이상이 들었다.
▶1966년 미 의회는 대통령 이하 모든 연방 공무원이 일정액 이상의 외국 선물을 받으면 국고에 귀속시킨 뒤 관보에 공개하라는 법을 만들었다. 선진국들이 비슷한 입법을 하면서 외교 선물의 단가는 낮아졌다. 그 후에도 계속 고가의 선물을 한 것은 주로 석유 부국들이었다. 사우디 왕실은 2013~2014년 오바마 가족에게 에메랄드·루비·진주 등 130만달러(18억원)어치의 선물을 했는데 모두 국고 귀속됐다.
▶트럼프 미 대통령이 카타르로부터 약 4억달러(5610억원) 상당의 보잉 747 항공기를 선물받아 논란이다. 미국 외교 역사상 최고가 선물이라 한다. 트럼프는 “공짜인데 안 받으면 멍청이”라고 했지만 에어포스원에 요구되는 통신 보안과 방어 장비 등을 갖추려면 세금 수천만 달러가 들 전망이다. 트럼프는 집권 1기 때도 아베 일본 총리가 준 금장 골프채 등 선물 100여 점을 신고하지 않았다.
▶외교가에선 정상 간 선물이 ‘정보전’이라고 한다. 사전에 상대의 취향과 관심사에 대한 정보 수집을 치열하게 하기 때문이다. 2022년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바이든 미 대통령에게 프랑스 영화 ‘남과 여’의 오리지널 사운드트랙 음반을 선물했다. 바이든 부부가 첫 데이트 때 본 영화를 알아내서 고른 선물이었다. 트럼프는 첫 취임 전인 2016년부터 1990년대에 도입한 에어포스원이 너무 낡았는데, 신규 도입 가격이 비싸다고 불평했다. 카타르가 이를 알고 선물을 잘했다고 하기엔 스케일이 너무 큰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