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이철원

한 대형 마트에서 무당(無糖) 불고기를 출시하자마자 양념육 코너의 판매량 1위를 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무당 불고기란 설탕을 빼고 대체 감미료를 사용해서 양념한 제품이다. 비만·당뇨 인구가 늘면서 식품 업계의 ‘제로(0) 슈거’ 제품 생산이 탄산음료, 과자를 넘어 양념육, 고추장, 아이스크림, 껌, 숙취 해소제 등 온갖 식품으로 확산되는 추세다.

▶과거 유럽에서 설탕은 귀하고 값비싼 사치품이었다. 결핵 등을 치료하는 약재로도 썼다. 설탕을 뜻하는 영어의 ‘슈거(sugar)’, 프랑스어의 ‘시크르(sucre)’는 고대 인도의 산스크리트어 ‘샤르카라’가 어원으로 알려져 있다. 인도에서 만든 결정체 형태의 설탕이 아랍을 거쳐 유럽에 전해져 귀족들의 과시용 음식이 됐다. 유럽 강국들이 신대륙 식민지에 사탕수수 농장을 세우면서 설탕이 대량 공급되기 시작했다.

▶우리나라에서도 설탕은 귀한 식품이었다. 6·25 전쟁 직후에는 전량 수입에 의존하는 설탕이 같은 무게의 소고기보다 비쌌다. 나중에 기업들이 설탕 대량생산에 나서면서 명절 선물로 각광받았다. 막걸리에도, 국수에도 설탕 타서 달달하게 먹으면 힘이 부쩍 난다던 시절이었다.

▶그런 설탕이 지금은 기피 대상이 됐다. 설탕만큼 빨리 신세가 급락한 식품을 찾기도 힘들 듯 하다. 당뇨와 불면증에 시달리던 한 지인은 ‘무당·무카페인·무알코올’의 3무(無) 식습관을 실천했더니 건강이 확 좋아졌다고 했다. 설탕과 비슷한 신세가 카페인이다. 식(食)문화사 대가는 “한잔의 커피는 기적”이라고 찬양했다. “커피가 발견되기 전에는 극소수 천재들이나 가능했던 뛰어난 업적을 커피 덕분에 수많은 사람이 이룰 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 카페인의 각성 효과를 말한 것이다. 하지만 요즘은 그게 지나쳐 몸에 해가 되는 시대를 살고 있다.

▶설탕, 카페인 ‘제로 열풍’에 알코올도 영향을 받고 있다. ‘2024 파리올림픽’의 글로벌 공식 맥주로 세계 최대 맥주 회사의 무알코올 맥주 ‘코로나 세로(0 이란 스페인어)’가 선정됐다. 알코올 없이 술자리 분위기만 느끼려는 소비자가 많아지면서 시중에는 무알코올 맥주, 무알코올 샴페인 등이 나와 있다. 무알코올 맥주는 ‘0.00%’와 ‘0.0%’의 승부로 갈린다. 알코올이 전혀 들어 있지 않으면 ‘0.00%’로, 약간이라도 들어있으면 ‘0.0%’로 표기한다. 예민한 소비자는 0.0%짜리를 마셔도 취기를 느낀다고 한다. 지나침은 모자람만 못하다고 하더니, 결국 과잉 섭취가 ‘제로 유행’을 몰고 온 듯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