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김성규

1988년 입대했던 필자는 군 복무 중이던 1990년 초 어머니로부터 “입영 영장이 또 나왔다”는 전화를 받았다. 복무 확인서를 병무청에 내고 해결했지만 이듬해 제대하며 ‘전역증을 버렸다간 군대 두 번 갈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군필’임을 증명하는 용도 말고 전역증의 다른 쓸모는 없었던 것 같다.

▶로마 제국은 제대군인 예우가 각별했다. 로마 병사는 최대 25년을 복무하고 군문을 나설 때 13년 치 연봉에 해당하는 고액 상여금을 받았다. 상당수는 고향에 돌아가지 않고 그 돈으로 부대 인근 땅을 사서 농사를 지으며 살다가 적이 침입하면 다시 무기를 들었다. 그래서 황제들은 재정 부담을 무릅쓰고 전역병 예우에 정성을 쏟았다. 값비싼 청동판에 소속 부대와 계급을 새긴 전역증도 발급했다.

▶오늘날 미국이 군인 예우의 모범을 보여준다.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의 야구장 관중석엔 ‘돌아오지 못한 장병을 위한 좌석’이 있다. 만원 관중일 때도 그 자리는 비워둔다. ‘누구 덕분에 야구를 즐기는지 잊지 않겠다’는 감사의 뜻이 담긴 빈자리다. 아프가니스탄 전장에서 아군 진지에 날아든 수류탄을 밖으로 던지려다 오른손을 잃은 리로이 페트리 상사가 2011년 백악관에서 군인 최고의 영예인 명예훈장(Medal of Honor)을 받자 CNN은 정규 방송을 중단하고 이를 생중계했다.

▶올 들어 우리 국군 전역증 재발급이 크게 증가했다고 한다. 지난달 발급 건수가 작년 동기 대비 12배나 폭증해 이미 지난해 재발급 총량에 육박할 정도다. 미국 여행에 나선 예비역들이 현지에서 뜻밖의 전역증 혜택을 본 게 무용지물 전역증을 되돌아보게 된 계기라 한다. 미국 제대군인은 전역증을 박물관·미술관·관광지·쇼핑몰·음식점 등에 제시하고 할인을 받는다. 한국인 방문객에게도 “미국의 혈맹”이라며 같은 혜택을 준다. 그래서인지 소셜미디어엔 전역증을 재발급받았다는 인증샷 릴레이도 이어지고 있다.

▶카투사로 복무한 필자는 전역식을 두 번 했다. 미군 전역식에선 부대 사령관이 직접 참석해 “그간의 봉사에 감사한다”는 감사장을 주고 가슴에 훈장까지 달아줬다. 반면 한국군 전역식에선 종이 전역증 한 장 받는 게 전부였다. 이런 전역식을 경험하며 미군은 단지 화력만 막강한 군대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우리도 늦게나마 전역자 예우에 나섰다. 2021년 종이가 아닌 카드 형태의 플라스틱 전역증으로 개량했고 전역증을 지참하면 할인 혜택을 주는 곳도 생겨나고 있다. 이런 예우가 더 강화되어야 나라 안보도 튼튼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