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1~1992년엔 대입 학력고사를 치렀다. 12년간 치른 학력고사에서 340점 만점을 받은 수험생은 단 한 명도 없었다. 객관식이었지만 시험 과목이 15개 안팎이어서 만점 받기가 사실상 불가능했다. 1992년 마지막 학력고사에서 민세훈씨는 339점으로 아깝게 만점을 놓쳤다. 민씨는 서울대 법대에 수석 합격했고 현재 외국계 컨설팅업체에서 일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1993년부터는 수능을 보았다. 수능은 5지선다형이지만 6~7과목만 시험을 치른다. 1998년에 나온 첫 만점자는 서울대 물리학과에 간 오승은씨였다. 오씨는 수능 직후 인터뷰에서 당시 큰 인기를 끈 보이 그룹 H.O.T.에 대해 묻자 “H.O.T.가 뭐죠?”라고 답해 화제였다. 오씨는 과목별 정리 노트를 출간하며 상당한 인세를 받는 등 연예인 못지않은 관심을 끌었다. 오씨는 미국 MIT 대학원 물리학과를 거쳐 UC샌디에이고에서 생물물리학을 연구하는 교수로 재직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오 교수가 큰 과학적 성과를 냈다는 소식이 들려오기를 바란다.
▶2018년 입시에선 김지명씨가 중학교 3년 내내 백혈병을 앓았는데도 병을 이겨내고 수능 만점을 받아 화제였다. 그는 서울 강북구의 평범한 가정 출신으로 학원에도 다니지 않았다고 했다. 같은 해 입시에선 김형태씨가 공군 취사병으로 복무 중 수능에 응시해 만점을 받은 것도 많은 화제를 낳았다.
▶하지만 수능 만점자가 수십 명 나오는 해도 있고 2000년대 이후 수능 만점자들이 대부분 의대에 진학하는 것이 패턴으로 굳어지면서 만점자에 대한 관심도 크게 줄어들었다. 가장 쉬웠다는 2000년 수능에선 만점자가 66명, 2013년 수능에서도 33명의 만점자가 나왔다. 전형 방법이 다양해지면서 수능 만점자도 입시에서 탈락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2014년엔 자연계 유일 만점을 받은 전모씨가 서울대 의대 입시에서 떨어졌다. 올봄엔 수능 만점자 출신인 명문대 의대생이 서울 강남역 인근 건물 옥상에서 여자 친구를 살해한 혐의가 드러나 충격을 주기도 했다.
▶지난달 14일 치러진 올해 수능에서 만점자가 11명 나왔다. 재학생 만점자는 4명인데, 이 중 한 명인 서울 광남고 서장협군은 의대에 가지 않고 서울대 컴퓨터공학과 진학을 희망한다고 한다. “의대 생각은 원래 없었다”고 했다. 서군과 같은 수재급 인재들이 이공계열에 많이 진학해야 한다. 가진 자원은 두뇌밖에 없는 나라에서 이공계 인재 없이 무엇으로 먹고사나. 수능 만점자가 의대 아닌 공대 지망이란 것이 화제가 되는 것 자체가 비정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