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양진경

천년 고찰 불국사는 고려 때 지진으로 석가탑이 두 번이나 무너졌지만, 불국사 전체를 떠받치는 석축과 청운교, 백운교는 멀쩡했다. 자연석을 먼저 쌓고 자연석 면에 맞춰 인공 장대석을 쌓은 ‘그랭이 공법’, 석축 중간중간 땅속 깊이 박는 ‘동틀돌’을 배치해 석축의 안정성을 높인 점, 백운교 아래에 이중 아치(쌍홍예) 구조를 넣어 절대 무너지지 않게 만든 점 등 3가지 내진(耐震) 설계 덕이었다. 첨성대도 맨 위에 설치한 정자(井字)석이 균형추 역할을 해 지진 충격을 견뎌낸 것으로 밝혀졌다.

▶로마 건축의 걸작, 판테온은 43m 높이 돔 건축물이다. 기둥 하나 없는데 2000년간 온갖 지진을 견뎌냈다. 벽이 기둥 역할을 하는 아치형 구조인 데다, 위로 갈수록 가벼운 재료를 써 충격을 잘 흡수하는 구조를 가졌기 때문이다. 반면 12세기 작품 피사의 사탑은 만들자마자 5도 이상 기운 부실 건물이었다. 그런데 피사의 사탑이 천년 동안 온갖 지진에도 쓰러지지 않은 건 왜일까. 사탑의 심층에 있는 연약 지반이 지진 충격을 흡수해왔다는 뜻밖의 연구 결과가 나왔다.

▶지진의 나라 일본은 충격 흡수 기능이 좋은 목조건물을 주로 짓는다. 그런데 1923년 관동 대지진 때 도쿄의 목조건물은 다 무너졌는데, 서양식 석조 건물 제국호텔만 멀쩡했다. 설계를 맡은 미국 건축가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가 지반이 진흙층임을 알고, 물 위에 배를 띄우는 구조로 건물 기초를 만들고, 마치 기차를 연결하듯 건물 동을 배치하는 내진 설계를 한 덕분이었다.

▶며칠 전 대만에서 발생한 규모 7.2 강진에도 초고층 빌딩 ‘타이베이 101′은 멀쩡했다. 건물 꼭대기에 설치한 무게 660t의 쇠뭉치 진자가 지진 충격을 흡수한 덕분이다. 지진·강풍 같은 외부 충격이 건물을 흔들 때, 이 진자가 반대 방향으로 움직여 건물의 균형을 잡아준다. 123층 롯데월드타워도 중심 기둥을 감싸는 보조 기둥, 대나무 마디 기능을 하며 충격을 흡수하는 벨트 트러스트 등 최첨단 내진 구조를 갖춰 진도 9 강진도 견딜 수 있다.

▶세계 1위 반도체 파운드리, 대만의 TSMC는 지진 피해에서 자유롭지 못한 모양이다. 빛으로 웨이퍼에 회로를 새기는 극자외선(EUV) 장비는 진동에 극도로 취약해 적잖은 피해를 본 것으로 보인다. 전 세계 EUV 관련 엔지니어들에게 대만 긴급 출장 명령이 떨어지고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 반도체 클린룸도 내진 구조를 갖추고 있다고 하는데 이번에 다시 점검해 볼 필요는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