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에 웨이브를 넣는 고데기는 미용실에서 사용할 때 온도가 섭씨 185도쯤이다. TV 방송 출연 때 분장실에서 고데기가 잠깐 귓가에 스쳐도 흠칫 놀랄 정도로 뜨겁다. 2006년 한 중부 도시에서 여중 3학년생이 고데기로 학교 폭력을 당했다고 언론에 알려졌다. 가해 학생은 고데기로 맨살을 지지고 아물 때쯤에 다시 찾아와 상처를 뜯어내기까지 했다고 한다. 사진이 너무 참혹해서 눈을 돌렸다.

▶최근 시리즈물 ‘더 글로리’에도 비슷한 장면이 나온다. 방과 후 텅 빈 강당에서 또래 서너명이 모여 한 아이를 꼼짝 못 하게 붙잡은 다음 고데기로 팔다리를 지졌다. 나중에는 다리미까지 등장했는데, 오로지 “말을 잘 듣지 않는다”는 이유 같잖은 이유였다. 옛 사극에서 간혹 봤던 인두 고문과 낙형 장면을 흉내 냈을까. 사춘기 아이들이 벌이는 짓이라 더 잔혹했다. 딸 가진 부모들은 몸이 떨릴 만큼 충격적이었을 것이다.

▶드라마에선 피해 학생이 훗날 성인이 된 ‘가해 친구들’을 찾아가 복수를 한다. “어떤 증오는 그리움을 닮아서 멈출 수가 없거든.” “우리 같이 천천히 말라 죽어보자.…” 그러나 현실에서는 사회 구성원이 대신 나서서 학폭 가해자를 집단 징벌한다. 학폭 때문에 모습을 감췄던 어떤 배우는 화보를 찍고 복귀하려다 드라마가 화제가 되자 다시 사라졌다. 아이돌 가수, 스포츠 스타, 유명 유튜버 할 것 없다. 학폭 과거가 드러나면 갑자기 모든 것을 잃으며 ‘사회적 매장’에 가까운 후과(後果)를 치른다.

▶부모도 예외가 아니다. 국가수사본부장에 임명됐던 변호사가 하루만에 낙마했다. 처음엔 ‘검사 출신’이어서 논란이었으나 주말에 아들의 학폭 전력이 터졌다. 몇 년 전 동급생에게 1년간 폭력을 가했고, 강제 전학 처분을 받았는데, 아비가 이의 신청을 하며 소송을 냈다가 패했다. 아들은 서울대에 들어갔다. 젊은 세대의 분노가 인터넷을 달궜다. ‘아빠 찬스 소송’ ‘명문대 입학’을 더 용납 못 했다. ‘젊은이 역린’을 건드린 셈이다.

▶다른 것은 몰라도 절대 잊을 수 없는 게 있다. 영혼까지 부서뜨리는 폭행이다. 해마다 3만명 가까운 피해 학생 중 18%는 어디 하소연도 못 한다는데, 가해 학생은 ‘장난 삼아’ ‘아무 이유 없이’ ‘스트레스 풀려고’ ‘강해 보이려고’ 그 짓을 저지른다. 피해 학생의 25%는 자살을 생각했다고 한다. 학폭은 사전 예방과 사후 징벌 조치도 중요하지만, ‘언젠가는 반드시 대가를 치르고 만다’는 경각심도 꼭 심어줬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