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박상훈

2만년 전 들소 사냥에서 낙오한 원시 소년이 상처입은 늑대와 만난다. 소년은 늑대를 치료해 주고 먹을 것도 나눠준다. 늑대는 그런 소년을 믿고 따른다. 둘은 함께 사냥하고 추위 속에 체온을 나눈다. 맹수의 공격에 맞서 싸우며 일심동체가 된다. 이렇게 인간과 개의 관계가 시작된다. 영화 ‘알파: 위대한 여정’의 스토리다.

▶서구에서 개는 권력자의 벗이자 상징이었다. 프랑스 부르봉 왕조와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왕가는 개 기르는 것을 전통으로 여겼다. 영국 빅토리아 여왕도 개 수십 마리를 길렀다. 왕족의 초상화에 애완견을 넣는 일도 유행했다. 태양왕 루이 14세는 자기 개의 초상화를 그렸다. 신성로마제국 황제 카를 5세는 사냥개와 함께 선 초상화를 그린 화가에게 귀족 작위를 내렸다. 신라의 왕족들도 동경이라고 불린 경주 개를 길렀다고 한다.

▶역대 미국 대통령들은 자신이 기르던 개를 데리고 백악관에 입성했다. 이른바 ‘퍼스트 도그(first dog)’다. 퍼스트 도그는 대통령 행사에 단골로 등장했다. 루스벨트 대통령 이후 100년간 퍼스트 도그를 두지 않은 대통령은 트럼프가 유일하다. 우리 대통령들도 김영삼 전 대통령을 제외하곤 모두 개를 키웠다. 이유가 있다. 개와 함께 하면 딱딱하고 차가운 모습이 아니라 부드럽고 친근한 얼굴로 비친다. 대통령의 스트레스를 줄여주는 효과도 있다. 개와 함께 있을 때 혈압이 낮아지고 행복 호르몬이 분비된다는 실험 결과가 적지 않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청와대에 들어갈 때 ‘토리’라는 유기견을 입양했다. 세계 최초의 유기견 퍼스트 도그라면서 “동물도 편견과 차별에서 자유로울 권리가 있다”고 했다. 2018년엔 북한 김정은에게서 풍산개 두 마리를 선물받았다. 남북 관계의 상징처럼 여겼다. 그래서 풍산개와 노는 모습을 수시로 공개하고 새끼에게 직접 우유를 먹이는 사진도 올렸다.

▶퇴임 후엔 풍산개 3마리를 양산 사저로 데려갔다. 그런데 6개월 만에 갑자기 더 이상 못 키우겠다며 정부에 반납하겠다고 했다. 개 사료 값과 관리비 월 250만원을 정부가 지원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한다. 자신이 개 키우는 돈을 왜 국민 세금에서 달라는 것인지 이해하기 힘들다. 아마도 전무후무할 일일 것 같다. 그 돈을 안 준다고 키우던 개를 내보내는 것은 냉혹하다. 그 개들은 SNS에서 쇼하는 도구였나. 키우던 개를 버리는 사람은 많지만 전직 대통령이 돈 때문에 이럴 수도 있나. 이 일에 ‘문 전 대통령의 본모습을 보았다’고 말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