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06년 프랑스 나폴레옹 황제가 트라팔가르 해전에서 영국에 참패한 뒤 영국과의 무역을 막는 대륙봉쇄령을 내렸다. 세계 1위 면직물 수출국 영국에선 재고가 폭증하고 생필품 값이 폭등했다. 무역업자 로스차일드 가문이 해결사로 나섰다. 네덜란드, 덴마크 해안 갯벌을 활용한 밀무역 경로를 뚫었다. 헐값이 된 면직물을 매집해 대륙으로 밀수출하고 생필품을 밀수입해 떼돈을 벌었다. 훗날 이 밀수 경로로 웰링턴 장군에게 군자금을 전달해 워털루 전투 승리에 힘을 보태기도 했다.

▶서방이 우크라이나를 침략한 러시아에 강력한 경제 제재를 가하고 있다. 러시아를 달러 결제망에서 축출하고, 원유·천연가스 수입 금지, 해외 자산 동결 등 러시아 경제를 옥죄고 있다. 맥도널드, 이케아 등 글로벌 기업 400여 곳도 철수, 영업 중단 등으로 동참하고 있다. 하지만 효과가 신통치 않다. 며칠 전 러시아 푸틴 대통령은 “올 1분기 경상수지 흑자가 사상 최대인 580억달러를 기록했다”고 자랑했다. 주 이유는 러시아산 원유·천연가스가 ‘상표 바꿔치기’ 수법을 통해 여전히 활발하게 수출되고 있기 때문이다.

▶러시아 유조선이 라트비아 항구로 원유를 싣고 오면 다국적 정유사들이 다른 나라 원유에 러시아 원유 49.9%를 섞은 다음 ‘라트비안 블렌드(Latvian Blend)’란 상표를 붙여 유럽 각국으로 판다. 러시아산 비중이 50% 미만이라 제재 대상에서 빠진다. 게다가 인도와 중국은 러시아 원유를 쓸어담다시피 사들이고 있다. 국제 유가 폭등 덕에 올해 러시아의 에너지 수출액은 작년보다 30% 이상 늘어난 3200억달러(390조원)에 달하고, 경상수지 흑자도 2400억달러를 웃돌 전망이다. 이 덕에 폭락했던 루블화 가치도 전쟁 전 수준을 회복했다.

▶글로벌 기업이 철수한 자리는 러시아 토종 기업들이 재빨리 메우고 있다. 1위 가구업체 호프(Hoff)가 매장을 늘려 이케아의 공백을 채우고, 도도 피자(Dodo Pizza), 테레모크(Teremok·패밀리 레스토랑) 같은 기업들이 맥도널드 직원들에게 새 일자리를 제공하고 있다.

▶미국의 한 싱크탱크가 1차 세계대전 이후 170건의 경제 제재 효과를 분석한 결과, 성공한 경우는 4%에 불과했다. 1990년대 인종차별국 남아공에 대한 제재 정도가 성공 사례에 속한다. 북한 제재는 실패 사례다. 경제 제재는 해당국 국민들을 오히려 결집시키고 독재자의 권력 강화로 이어지기도 한다. 푸틴에 학살당하는 우크라이나 국민은 “신(神)은 어디에?”라고 물어야 할 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