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학자들은 로마 제국의 몰락 원인을 인플레이션에서 찾는다. 로마 제국은 식민지 확장 과정에서 필요한 전쟁 비용을 조달하기 위해 금화·은화를 대량 발행했다. 금, 은이 부족해지자 동(銅)을 잔뜩 섞어 악화(惡貨)를 만들었다. 화폐 가치가 폭락하며 물가가 폭등했다. 병사들이 주화 월급을 거부하고, 시민들은 물물교환으로 대응했다. 화폐 질서가 무너지면서 제국도 쓰러졌다.
▶이후에도 수백년 지속된 금 본위제는 대공황과 세계 대전 탓에 위기에 봉착한다. 미국은 대공황 원인을 수요 부족에서 찾은 경제학자 케인스의 조언에 따라, 재정 보따리를 풀었다. 게다가 세계 대전 전쟁 비용을 조달해야 했기에 금 본위제 사수가 어려웠다. 물가가 불안해졌다. 유럽에선 1차 대전 패전국 독일이 전쟁 배상금을 마련하기 위해 돈을 마구 찍다 연 물가상승률이 1100%를 웃도는 초(超)인플레이션을 겪었다.
▶1980년대 초 오일쇼크 여파로 미국 물가가 13%를 웃돌았다. 레이건 대통령이 발탁한 폴 볼커 연준 의장이 ‘인플레이션 파이터(Inflation fighter)’를 자임했다. 기준금리를 22%까지 끌어올렸다. 경기 침체가 촉발돼 실업률이 치솟았지만 물가는 3%대로 떨어졌다. 당시 한국에는 전두환 대통령과 김재익 경제수석 콤비가 있었다. “경제는 당신이 대통령”이라며 전권을 위임받은 김 수석은 예산 동결, 근로자 임금 동결 등 초긴축 정책으로 28%까지 치솟았던 물가를 3%대로 끌어내렸다.
▶1990년대 이후 사회주의 몰락, 세계화와 맞물리며 ‘고성장·저물가’ 황금시대가 펼쳐졌다. 일본에선 인구 감소, 고령화 탓에 물가가 뒷걸음질하는 디플레이션 문제가 부각됐다. 일본은행 간부들은 10년째 제자리걸음인 편의점 삼각김밥 가격 탓에 잠을 설쳐야 했다. 경제학자들이 세계 경제의 일본화를 걱정할 지경이었다.
▶코로나 사태로 전 세계가 돈을 푼 데다, 글로벌 공급망도 붕괴됐다. 우크라이나 사태까지 겹치며 원자재발 물가 폭등이 시작됐다. MZ세대에겐 인플레이션 자체가 낯선 현상인데, 40년 만에 세계 경제의 골칫거리로 귀환했다. 미국은 공격적 금리인상으로 잠재우려 한다. 우리나라도 비슷한 사정이나 1800조원 가계부채가 시한폭탄이다. 인플레는 실질 소득을 줄여 ‘소리 없는 세금’이라 불린다. 반면 채무 부담을 줄여 주는 측면도 있다. 물가도 잡고 가계부채도 연착륙시키는 묘수가 절실하다. 아웅산 사태로 희생된 ‘천재 관료’, 김재익 수석이 살아 돌아오면 어떤 처방을 내놓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