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지도 아래 지난 24일 평양 순안비행장에서 발사한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17형' 시험발사 영상을 조선중앙TV가 25일 공개했다. /조선중앙TV 화면 캡처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폭군이 되는 법’의 마지막 회는 북한의 김씨 정권을 다루고 있다. 히틀러, 스탈린 등 쟁쟁한 폭군을 누르고 최종회를 차지했다. 20세기 이후 세습에 성공한 유일한 절대 권력이라는 이유다. ‘영원히 지배하라’가 제목으로 달린 이 다큐는 북한의 성공 비결을 간추렸는데 그중 하나가 영상이다. 영화를 통해 김씨 일가를 신격화하는 데 성공해 마침내 불멸의 권력에 다가섰다는 것이다.

▶김정은의 아버지 김정일은 전 세계에서 영화 덕을 가장 크게 본 독재자라고 한다. 한때 후계 경쟁에서 밀렸던 김정일은 영화를 김일성 우상화에 활용해 후계자로 급부상했다. ‘피바다’ ‘꽃 파는 처녀’ ‘한 자위대원의 운명’ 등이 이때 제작됐다. 북한 영화의 전성기였다. 영화 수준을 높이겠다고 한국 감독과 배우까지 납치할 정도로 광적이었다. 예술적 가치와 감동을 논할 수 없더라도 당시 북한 영화엔 전율을 일으키는 장대한 서사는 있었다.

▶조선중앙TV가 김정은의 탄도미사일 참관 영상을 공개했다. 유광 점퍼에 선글라스를 낀 김정은이 슬로 모션으로 미사일 격납고에서 나왔다. 할리우드 영화 ‘탑건’의 한 장면 그대로다. 김정은이 시계를 보다가 선글라스를 벗는 장면은 짧은 영상을 리듬감 있게 반복하는 편집 방식으로 처리했다. 싸이의 뮤직비디오 ‘강남스타일’에서 사용한 코믹 기법이다. 공중에서 드론으로 찍은 탄도 미사일 장면을 고속 회전시키는 기교까지 부렸다. 영화광 아버지가 봤다면 북한의 영상 제작 수준이 어쩌다 이 지경이 됐는지 입을 다물지 못했을 것이다.

▶북한 권부에도 탁현민 같은 쇼맨이 등장한 게 아니냐는 얘기가 나왔다. 북한은 작년 심야 열병식 때부터 건물 외벽에 빛을 입히는 미디어 파사드, 드론 촬영 등 각종 기법을 도입했다. 하지만 아무리 북한판 탁현민이라도 김정은 허락 없이 ‘최고 존엄’의 모습을 이렇게 무지막지하게 처리하는 것은 상상할 수 없다. 할리우드 스타일이든, 강남 스타일이든 각본·연출·제작·주연은 모두 김정은이라는 것이다.

▶리비아의 독재자 카다피는 마이클 잭슨 의상을 입고 국제 무대에 나올 때부터 정신이 이상해졌다. 푸틴의 폭주는 근육질 영상을 공개한 다음부터 시작됐다. 북한이 세상에 웃음을 주기 위해 그런 영상을 공개했을 리 없다. 독재자를 ‘관종’으로 만드는 과도한 자신감은 언제나 세상을 위협했다. 북한이 만든 영상은 저열함 때문에 조롱받고 있지만 영상이 담은 실물 탄도미사일은 대형 핵탄두를 미국 전역에 날릴 수 있는 위력을 가지고 있다. 김정은의 황당 영상을 웃어넘길 수 없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