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은 서부영화, 전쟁영화, 사극의 단골 배우다. 전쟁터를 달리다 쓰러지고 총과 대포에 맞아 죽는 위험한 배역도 자주 맡는다. 그러다 목숨도 잃는다. 서부영화 ‘제시 제임스’에 출연한 말은 주인공과 함께 20m 절벽 아래 강으로 떨어지는 장면을 찍다가 익사했다. 결국 큰 사고가 터졌다. 한 영화에서 말이 무더기로 고꾸라지는 장면을 찍기 위해 쇠줄을 썼는데 넘어진 말 25마리가 몰사하는 참사가 빚어졌다. 두 사건 모두 1939년 발생했다. 이를 계기로 동물 복지 목소리가 터져 나왔고, 줄을 써서 말을 넘어뜨리는 촬영 기법도 거의 자취를 감췄다.

▶서커스도 동물 학대 논란에 휩싸인다. 국제동물보호단체가 2009년 볼리비아의 한 서커스단에 잠입해 동물들이 쇠사슬에 묶여 채찍질과 전기 충격을 당하는 모습을 촬영해 폭로했다. 볼리비아 정부가 서커스에 동물 사용을 금지했다. 이후 40여 나라가 동참했다. 146년 역사를 자랑하던 미국의 유명 서커스단도 새끼 코끼리를 쇠꼬챙이로 찔러가며 훈련하는 사진이 공개되며 2017년 문을 닫았다.

▶KBS 사극 ‘태종 이방원’에 출연한 말이 태조 이성계의 낙마 장면 촬영 도중 사고로 죽었다는 소식이 공분을 일으키고 있다. 공개된 동영상을 보니 기가 막힌다. 다리에 줄을 매달고 달리던 말은 줄이 당겨지자 바닥에 머리부터 나뒹굴며 목이 크게 꺾였다. 충격이 얼마나 컸는지 일어나지 못하고 발만 버둥거렸다. 말 등에 탔던 배우도 튕겨 나갔다. 너무 무모하고 위험한 장면이어서 보고도 믿기 힘들 정도였다.

▶KBS는 “사고를 통해 낙마 촬영 방법에 문제가 있다는 점을 확인했다”며 “다른 촬영 방법을 찾겠다”고 했다. 어이없는 해명이다. 미국이 쇠줄을 퇴출시킨 게 80여 년 전이다. KBS가 16년 전 제작한 ‘용의 눈물’과 8년 전 방영한 ‘정도전’에도 이성계의 낙마 장면이 나오지만 모두 말을 쓰러뜨리지 않고 비교적 안전한 방식으로 표현했다. 안전한 촬영법을 몰라서라기보다는 동물에 대한 최소한의 연민이나 안전에 대한 기본적인 고려가 없어서 빚어진 사고다.

▶한류 팬들은 “아카데미상 받고 ‘오징어 게임’ 찍은 나라 맞냐”고 한다. ‘태종 이방원’은 KBS가 “수신료의 가치를 입증하겠다”며 5년 만에 선보인 사극이다. KBS 게시판에는 “내 수신료 받아서 말을 죽이느냐”는 항의도 이어지고 있다. 수신료 가치를 증명하려면 정권 응원단식 보도부터 먼저 바꿔야 한다. 말 못하는 짐승의 생명도 소중히 여겨야 한다. 세상은 바뀌고 있고 여기에 뒤처지면 도태될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