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한국 씨티은행이 ‘씨티가란트 펀드’라는 상품을 내놨다. 투자금 대부분을 채권에 투자하고 채권 이자에 해당하는 부분만 주식에 투자해 고수익을 노리는 상품이었다. 미국 씨티 본사가 원금 지급을 보장한다고 하자 순식간에 2000억원이 모였다. 씨티은행에선 2·3호 펀드를 내놓으려 했는데 금융 당국이 제동을 걸었다. “(손실 가능성 있는) 펀드를 예금으로 오인하게 만든다”는 이유였다. 알고 보니 국내 은행들이 방해 공작을 펼친 결과였다. 몇 달 뒤 국내 은행들이 씨티 상품을 그대로 베껴 ‘원금보장형 펀드’라는 이름으로 대대적으로 판매했다.

2004년 11월 2일 한미은행과 씨티은행 서울지점이 통합된 한국씨티은행의 당시 하영구 행장(오른쪽에서 두번째)이 조선호텔에서 출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조선일보 DB

▶씨티은행이 한국에서 개인 상대 소매금융 영업을 시작한 것은 1986년부터다. 1989년 프라이빗뱅킹(PB), 1990년 ATM(현금입출금기), 1993년 24시간 폰뱅킹 등 혁신적인 서비스를 선보이며 시장을 선도했다. 규제 탓에 지점을 늘리지 못해 답답해 하던 씨티은행은 2004년 한미은행을 인수해 한국 시장 공략에 박차를 가했다.

▶하지만 외환위기 후 은행 통폐합으로 덩치를 키운 토종은행들과의 경쟁은 만만치 않았다. 은행 달력 배포조차 금기시하는 미국 본사의 영업 방침에 발목을 잡힌 사이 토종은행들이 한국적 영업으로 고객을 잠식해 갔다. 토종은행이 연 3조원대 수익을 내는 반면 씨티은행은 연 2000억원도 못 버는 소형 은행으로 쪼그라들었다. 수익 악화를 견디다 못한 씨티는 2017년 은행 점포 80%를 없애 충격을 주었다.

[만물상] ‘금융의 주한미군’ 삽입 일러스트

▶미국 본사 씨티그룹은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때 치욕을 겪었다. 서브 프라임 모기지 관련 부실 채권 탓에 미국 정부로부터 250억달러 구제금융을 받고 다우존스 지수에서도 퇴출됐다. 경쟁사인 JP모건은 공격적인 인수·합병으로 미국 1위 자리를 빼앗았다. 지난 2월 새로 취임한 씨티그룹 회장은 글로벌 전략을 수정할 때라며 한국을 포함해 아·태 지역 13국의 소매 금융 철수를 결정했다. 씨티그룹은 한국 직원 1인당 최대 7억원의 특별퇴직금 등 철수 비용만 1조원 넘게 써야 할 상황이다.

▶씨티은행은 한국 경제가 위기에 빠졌을 때 구원투수 역할을 많이 했다. 1970년대 석유 파동 때 2억달러 차관을 제공해 급한 불을 끄게 해주었고, 외환 위기 땐 240억달러 외채 상환 연장에 기여해 한국 정부로부터 훈장을 받았다. 2008년 글로벌 위기 땐 한미 통화 스와프 체결을 도왔다. 그래서 한국에서 ‘금융의 주한미군’이란 평판을 갖게 됐다. 비록 소매금융은 철수하더라도 ‘한국 금융 지킴이’ 평판은 이어지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