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5년 유럽에서 ‘강제수용소로 평화상을!’ 청원 운동이 벌어졌다. 수용소에 감금된 독일 언론인 카를 폰 오시에츠키에게 노벨평화상을 주자는 움직임이었다. 아인슈타인, 로맹 롤랑, 토마스 만 등이 앞장섰다. “한쪽 눈은 부어오르고 이는 뽑힌 채 부러진 다리를 질질 끌고 있었다.” 그의 처참한 수용소 생활이 국제적십자사를 통해 알려졌다. 논란 끝에 독일 언론인 오시에츠키가 1935년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그로부터 86년 후, 필리핀 언론인 마리아 레사와 러시아 언론인 드미트리 무라토프가 노벨평화상을 받는다.

일러스트=김도원 화백

▶오시에츠키는 수용소에 잡혀 있어 노벨상 시상식에 참석하지 못했다. 나치는 그의 노벨상 지명을 저지하려다 실패하자 모든 독일인의 노벨상 수상을 금지해 버렸다. 1889년 독일 함부르크에서 태어난 오시에츠키는 주간지 ‘벨트뷔네’ 편집장을 맡고 있던 1929년 독일 공군이 러시아에서 비밀리에 훈련하면서 재무장한다는 기사를 게재해 반역죄 및 간첩죄로 체포됐다. 18개월 형을 선고받고 사면된 후에도 군국주의와 나치 비판을 이어 가다 비밀경찰에 체포됐다.

▶마리아 레사가 필리핀 저항 언론의 상징이 된 건 두테르테 대통령 때문이다. 2016년 대통령 선거전에서 두테르테가 SNS 가짜 계정을 활용해 온갖 거짓 정보를 흘리며 지지자를 결집하고 반대자를 따돌린다는 사실을 파헤쳤다. 비판 기사를 낼 때마다 두테르테 지지자들의 협박, 정부 소송에 시달렸다. 레사는 홀어머니를 따라 어린 시절 미국으로 갔다. 프린스턴 대학을 졸업하고 필리핀으로 돌아가 CNN 마닐라·자카르타 지국장으로 활동했다. 10대 때 미국에서 민주주의와 언론 자유를 누리며 성장한 이 여성 언론인은 동료들과 뜻을 모아 2012년 온라인 매체를 창간했다.

▶‘필리핀의 트럼프’로 불리는 두테르테 대통령은 인권 탄압, 언론 탄압으로 악명 높은 포퓰리스트 정치인이다. 취임하자마자 ‘마약과 전쟁’을 선포하고 8000여 명을 즉결 처형했다. 실제 희생자는 2만명이 넘고 억울한 피해자도 상당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의 집권 이후 살해당한 언론인도 12명이다. 공동 수상한 러시아 무라토프 기자 상황도 녹록지 않다. 동료 기자들과 창간한 ‘노바야가제타’는 푸틴 정권의 언론 탄압에 맞서다 기자 6명이 의문의 죽음을 당했다.

▶나치 저항 언론인에 이어 86년 만에 노벨평화상이 권력 비리를 감시하고 표현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분투해온 언론인에게 돌아갔다는 사실이 시사하는 바가 작지 않다. 가짜 뉴스 단속을 핑계로 언론 자유를 후퇴시키는 ‘언론 재갈법’을 강행하려는 정권을 겪고 보니 새삼 더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