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47년 이탈리아 제노바 선원들이 흑해 무역항 카파에 들렀다가 주민들이 흑빛으로 변한 채 죽어가는 걸 봤다. 기겁하고 배를 돌려 달아났다. 그런데 항해 중 선원들이 하나둘 고열을 내며 쓰러지기 시작했다. 귀항할 무렵엔 성한 선원이 거의 없었다고 한다. 흑사병이 순식간에 좁은 배를 점령하고 이탈리아에 상륙했다. 1918년 스페인 독감이 창궐할 때 일본 순양함 ‘야하기’가 싱가포르에 입항했다. 처음엔 외부인 승선과 선원 하선을 모두 막았지만 독감이 끝난 줄 알고 선원 상륙을 몇 시간만 허락했다. 그런데 출항 이틀 만에 환자 4명이 나오더니 군의관 포함, 선원의 90%가 감염됐다. 다음 기착지인 필리핀에 도착했을 때는 선원의 10%인 48명이 사망한 상태였다.
▶해군 제독은 “선박 중에서도 군함은 튼튼한 깡통 안에서 수백 명이 같이 생활하는 구조”라고 했다. 내부가 선실 등 칸막이로 나눠져 있지만 통풍 시설은 하나로 연결되는 경우가 많다. 옛날 군함은 창문이라도 열렸으나 지금은 대부분 밀폐형이라고 한다. 좁은 공간에서 같이 숨 쉬는 셈이다. 먼바다에 있다면, 감염병 환자가 발생했다고 바로 내릴 수도 없다. 바이러스가 퍼지기 딱 좋은 환경이다.
▶지난해 미국 항모 루스벨트함에선 코로나 확진자만 1100여 명이 나왔다. 일부 승조원이 베트남에 잠시 내렸다가 미 해군력의 상징을 유령선으로 만들 뻔했다. 프랑스 항모 드골함은 승조원 1700여 명 중 700여 명이 감염됐고 러시아 핵 잠수함도 ‘코로나 어뢰’를 맞고 물 밖으로 나와야 했다. 중국 위협을 받는 대만 순양함에서 확진자가 속출하자 대만 국방장관은 사의를 표하기도 했다. 작년부터 전 세계 해군 함대가 코로나 집단감염에 시달리고 있다.
▶아프리카 아덴만에 파병된 해군 청해부대(문무대왕함)에서 장병 6명이 코로나 확진을 받았고 80여 명이 의심 증세로 격리됐다. 탑승한 해군 장병 300여 명 전원이 위험한 상황이다. 지난 2월 아무도 코로나 백신을 맞지 않은 채 무방비로 출항했기 때문이다.
▶지난 4월 해군 상륙함에서 38명이 코로나에 걸리자 국방장관은 “방역 실태를 전수조사하고 보완하라”고 지시했다. 4월에 군 백신 접종이 시작됐고 5월 한·미 정상회담에선 55만명분의 국군용 백신도 확보했다. 6월 군 통수권자인 문재인 대통령은 유럽에서 “북한에 백신 공급”까지 언급했다. 그런데 청와대와 정부 누구도 청해부대에 백신을 보낼 생각은 하지 않은 것이다. 태극기 달고 이역만리 파병 간 장병들이 북한보다 후순위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