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예능 프로그램에서 개그맨이 쓰던 사투리 유행어 ‘머선 129’(무슨 일이고)가 엊그제 갑자기 전 세계로 퍼졌다. 방탄소년단(BTS)이 신곡 ‘버터’로 빌보드 메인 싱글 차트 ‘핫100’ 1위를 차지하자 BTS 리더 RM이 이 표현을 써서 ‘머선 129, 너무 감사하고 보고 싶습니다’라고 소감을 올렸기 때문이다. 이를 BTS 번역계가 발 빠르게 영어, 스페인어 등으로 번역해 각국 팬들에게 알렸다.

일러스트=김도원

▶작년 말 BTS의 멤버 지민이 띄운 노래 ‘크리스마스 러브’에 등장하는 단어 ‘소복소복’을 놓고 해외 팬들 사이에서 흥미로운 반향이 일었다. BTS 번역계에서 ‘소복소복(sobok sobok)’은 ‘커다란 눈송이가 폭신한 눈침대를 만들며 소리 없이 땅에 쌓이는 것을 묘사하는 단어’라고 영어로 설명한 뒤 ‘falling falling’이라고 옮겼다. 그러자 “정말 사랑스러운 표현” “한국어는 감성이 풍부한 언어” “한국어를 너무 배우고 싶다” 등의 반응이 쏟아졌다.

▶BTS 번역계란 방탄소년단 팬들 중에 자청해서 트위터, 인스타그램, 유튜브 같은 소셜 미디어 계정에 BTS 노래 가사는 물론이고 그들의 말 한마디, 일정 하나하나까지 각국 언어로 번역해 올려주는 열정적인 팬 번역가들을 말한다. 이 BTS 번역계 덕에 BTS 팬들은 언어 장벽을 넘어 좋아하는 가수의 일거수일투족을 들여다본다. 방탄소년단이 ‘칠첩반상을 드림’이라고 글을 띄웠더니 ‘칠첩반상’에 대한 설명을 덧붙인 영어 번역이 바로 올라왔다. BTS 번역 트위터 계정 ‘둘셋’은 팔로어가 45만명, ‘클레어7’은 37만명이나 된다.

▶아이돌과 훈민정음을 합해 ‘돌민정음’이라는 신조어도 있다. 오빠(oppa), 언니(unnie), 막내(maknae) 같은 단어는 한류 팬들 사이에서 한국어 자체로 통용되는 돌민정음이다. 최근 맥도널드가 ‘BTS 메뉴’를 전 세계 40여 국가에 내놓으며 포장지에 한글로 ‘보라해’라고 인쇄했다. ‘보라해’는 BTS가 자신들의 상징색 ‘보라’에서 착안해 팬들에게 ‘사랑해’ 대신 ‘보라해’라고 말하면서 유행어가 된 ‘돌민정음’이다. 작년에 한 국내 업체가 ‘보라해’를 상표 등록하려다 BTS 팬들의 거센 항의로 출원을 취소했다.

▶1970~80년대에는 팝송 듣다 영어 공부했다는 청춘이 적지 않았다. 일본 만화에 빠져 일본어 배운 사람도 있다. 이제는 K팝이나 한류 드라마 덕에 한국어 배우겠다는 수요가 늘고 있다. BTS 번역계 같은 민간 외교관들이 그런 시대를 앞당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