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1일 오후(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백악관 이스트룸에서 열린 한국전쟁 명예 훈장 수여식에 참석해 랠프 퍼킷 주니어 퇴역 대령에게 훈장을 수여한 후 가족과 함께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뉴시스

1950년 10월 19일 백선엽 장군의 국군 1사단이 평양에 입성했다. 그날 펑더화이의 중공군 주력이 압록강을 건넜다. 그런데 중공군 참전 기념일은 19일이 아니라 25일이다. 국군을 상대로 첫 승리를 거둔 날을 기념일로 삼았기 때문이다. 당시 미군 일부 병력도 중공군과 교전했지만 유엔군 사령부는 소규모 중공군이 도강한 줄 알았다. 맥아더는 중공을 얕봤다.

▶11월 25일 중공군 18만이 청천강에서 북진하려던 국군과 미군을 공격했다. 대장정과 국공 내전, 항일 전쟁에서 단련된 군대였다. 산악·야간 이동, 침투, 매복, 기습 등이 몸에 뱄다. 밤에 담뱃불 하나 안 들킬 정도로 군기도 잡혔다. 적을 거의 포위한 뒤 공격하는 것이 기본 전술이다. 이런 중공군과 처음 맞닥뜨린 아군은 크게 당황했다. 야음을 틈타 무전기 대신 피리·나팔로 공격 신호를 보내며 사방에서 밀려드니 공포스러웠을 것이다. 무식한 ‘인해전술’이 아니었다.

▶당시 마오쩌둥은 한국군을 집중 공격하라고 했다. 훈련 기강 장비 모두 부족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청천강 오른쪽을 지키던 국군 2군단이 궤멸됐다. 군단장은 그 사실조차 몰랐다. 주력인 미 8군이 완전 포위될 위기였지만 터키여단의 사투 덕분에 겨우 퇴각로를 확보했다. 터키군은 모자를 던져놓고 그 뒤로는 물러서지 않았다고 한다. 청천강 전투에서 1만명 이상 전사자를 낸 미군은 38선 이북을 포기하고 후퇴해야 했다. 남북 통일의 꿈은 산산조각 났다.

▶바이든 대통령이 문재인 대통령이 지켜보는 가운데 청천강 전투 영웅인 퍼킷 예비역 대령에게 ‘명예 훈장’을 수여했다. 당시 퍼킷 중위는 수류탄과 박격포탄 파편에 중상을 입고도 물러서지 않았다. 국군 9명이 같이 싸웠다. 미군 ‘명예 훈장’은 한 번의 작전에서 1개 사단당 1명만 받을 수 있는 최고 훈장이다. 이를 받은 군인에게는 계급과 관계 없이 경례로 예를 표하는 것이 미군 전통이다.

▶문 정부가 임명한 광복회장은 백선엽 장군의 현충원 안장을 가로막았다. 6·25 남침에 공을 세워 김일성 훈장을 받은 김원봉의 서훈을 주장하기도 했다. 문 대통령은 바이든보다 먼저 시진핑과 통화해 “중국 영향력이 날로 커지고 있다”고 칭송했다. 중국공산당 100년을 “진심 축하”하기도 했다. 그러자 미 상원 외교위원장이 “이러려고 (6·25 때) 우리가 함께 피를 흘렸느냐”고 분개했다. 문 대통령은 중공군을 막으려고 청천강에 피를 쏟은 미군 훈장을 보고 무슨 생각을 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