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혼녀가 있는 청년 스티븐이 약혼녀의 사촌 자매인 매기를 납치해 밤새도록 구애한다. 매기는 “윤리에 어긋난 짓을 할 수는 없다”며 집요한 유혹을 뿌리쳤다. 그런데 돌아와 보니 ‘사촌의 약혼자와 놀아난 부정한 여자’가 돼 있었다. 헛소문이 수습할 수 없을 만큼 퍼졌고 매기는 목숨마저 잃는다. 19세기 영국 소설가 조지 엘리엇의 장편 ‘플로스 강의 물방앗간’ 이야기다. 소설에서 마을 사람들은 무고한 여성을 마녀사냥하고도 “나는 윤리적이다”는 착각에 빠져 도덕적 우월감까지 즐긴다.

▶프랑스 혁명 전야, 루이 16세의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는 혼외정사를 했다는 헛소문에 시달렸고 “빵이 없으면 케이크를 먹으라”는 말을 했다는 누명까지 쓰고 단두대에 올랐다. 오늘날엔 소셜미디어가 가짜 뉴스발(發) 마녀사냥의 온상이다. 미국인 3분의 2가 소셜미디어로 뉴스를 접한다. 퓰리처상 수상 저술가 미치코 가쿠타니는 책 ‘진실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에서 “뉴스를 가족이나 친구, 페이스북, 트위터에 의존하면 가짜 뉴스를 게걸스레 먹는 괴물에게 먹히는 꼴”이라고 경고했다.

▶국내에서도 낯설지 않은 풍경이다. 몇 해 전 서울의 한 버스 기사는 버스에서 뛰쳐나간 아이를 찾아야 한다는 엄마의 애타는 정차 요구를 외면했다는 사이버 공격에 시달렸다. 버스를 아무 곳에나 세우면 그게 더 위험하다. 프로 배구선수 박상하는 학폭 허위 폭로 때문에 운동을 그만뒀다. 타인을 매도함으로써 정의감을 누리려는 심리, 잘나가는 이들에 대한 반감, 사실보다 흥미를 더 자주 노출하도록 설계된 소셜미디어 알고리즘 등이 공범으로 지목된다.

▶'벤츠 보복 주차 공식 사과문'이란 제목의 글이 엊그제 자동차 관련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게재됐다. 홈쇼핑 건물 지하 주차장 두 칸에 걸쳐 차를 댄 벤츠 차주를 비난하며 글쓴이가 제시한 팩트들이 가짜였다고 자백했다. 다른 주차 공간이 있는데도 일부러 벤츠 옆에 바짝 주차한 사실이 드러났다. 벤츠 차주가 이미 자초지종을 밝혔다. 그때 귀 닫고 떼로 몰려가 조롱하고 비난했던 이들이 반성했다는 소식은 없다.

▶2000년 전 로마 시인 베르길리우스는 “모든 악(惡) 가운데 가장 속도가 빠른 악은 입소문”이라고 했다. 오늘날엔 거의 광속으로 퍼진다. 어느 기업 대표는 포털 사이트에 퍼진 자신 관련 소문을 모두 찾아내 삭제하기 위해 전담 인원까지 동원했다. 그러나 그럴 힘이 없는 보통 사람들은 앉아서 당할 수밖에 없다. 나도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각성이 일어나고 포털 사이트들이 돈보다 윤리를 중시하지 않으면 인터넷은 ‘헛소문의 지옥’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