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인이 최근 러시아산 코로나 백신 ‘스푸트니크V’에서 ‘V’가 알파벳 대문자 ‘V’인지, 로마 숫자 ‘Ⅴ’인지 물었다. 국내 기사를 검색해 보면 브이와 5로 해석한 것이 섞여 있다. 스푸트니크V는 구소련이 1957년 인류 최초의 인공위성인 스푸트니크를 발사한 것처럼 러시아가 전 세계 백신 개발 레이스에서 승리(Victory)했다고 만든 이름이다. ‘V’에 대한 관심은 이 백신을 무시하다가 최근 부쩍 관심이 늘어난 것을 보여주고 있다.
▶러시아는 지난해 8월 세계 최초로 코로나 백신을 승인해 세계를 놀라게 했다. 푸틴 대통령은 “모든 검증 절차를 거쳤다”며 자신의 딸도 이 백신을 맞았다고 했다. 그러나 알고 보니 1~2상 결과만으로 승인했고 3상을 하지 않은 것으로 밝혀졌다. 그렇게 잊히는 듯했지만 지난 2월 러시아가 국제 의학학술지 ‘랜싯’에 3상 결과 91.6%의 코로나 예방 효과를 보였다고 발표하면서 분위기가 바뀌었다. 랜싯은 ‘뉴잉글랜드저널오브메디신’과 함께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학술지다.
▶논문 게재가 전 세계적인 백신 공급 부족과 맞물리면서 러시아 백신을 쓰는 나라가 늘어났다. 주로 동유럽, 남미, 동남아 국가들이지만 백신 부족에 허덕이는 독일과 프랑스, 이탈리아 등 유럽 국가들도 관심을 보이고 있다. 우리나라도 문재인 대통령이 이 백신 도입 가능성을 점검해 보라고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러시아 백신의 안전성과 효능을 평가할 자료는 여전히 부족하다는 것이 전문가들 평가다. 랜싯 3상 논문도 임상 참여자가 2만명 이하로 적은 데다 참여자 중 대조군이 5000명 이하인 기형적인 구조여서 통계적인 신뢰가 떨어지는 문제가 있다(김우주 고대구로병원 교수). 이미 이 백신을 대량 접종한 나라들의 결과를 보는 방법도 있다. 그러나 러시아 등은 접종 결과를 모니터링하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지 않아 믿을 만한 자료를 얻기 어렵다. 이 백신이 아스트라제네카·얀센 백신과 비슷한 아데노바이러스로 만들어서 혈전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우려도 상당하다.
▶지금으로서는 이 백신을 심사 중인 유럽의약청(EMA)이 어떻게 판단하는지 지켜볼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러시아 백신을 도입하는 데 또 하나 조건이 있다. 정부가 먼저 백신 조기 확보 실패와 수급 어려움에 대해 솔직하게 인정하고 국민들에게 양해를 구하는 일이다. “백신 도입이 늦지 않았다”고 강변하고 도입 차질을 우려하면 “가짜 뉴스”라고 윽박지르다 불쑥 러시아 백신을 도입하겠다고 하는 것은 파렴치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