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대선 때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가 김종인 당 국민행복위원장에게 SOS 전화를 걸었다. 사퇴 의사를 밝힌 그를 만류하면서 도와달라고 거듭 부탁했다. 2016년에는 민주당 문재인 대표가 그를 찾아가 비대위원장을 맡아달라고 간청했다. 수락하지 않자 집으로 서너 번 찾아가 거의 무릎을 꿇다시피 했다. 그는 그 두 선거에서 모두 이겼다. 이번 서울·부산시장 선거도 승리했다. 그래서 ‘김종인 매직’이란 말이 생겼다.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장/만물상 삽입

▶그는 전국구(비례대표)로만 5선을 지냈다. 한국 정치사에 전무후무한 기록이다. 정당도 여러 번 바꿨다. 한때 전두환의 경제 가정교사라는 말도 있었다. 1987년 대선 때는 민정당 사회개발연구소장으로 여론조사 기법을 처음 도입해 4자 대결에서 승리했다. 이후 노태우 대통령의 신임을 받았다. 2002년 대선 땐 노무현, 2007년엔 이명박 후보가 자문했다고 한다.

▶그에겐 보수·진보의 구분도, 정당에 대한 얽매임도 소용없는 것 같다. “우리나라에 진보가 어딨어?” “보수란 말 쓰지 말라”고 한다. 양 진영을 오가면서도 아무 거리낌이 없었다. 쓰임이 있고 부르면 간다는 것이다. 누가 이길 사람인지, 어떤 일을 하면 이기는지 간파했다. 지는 일은 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세력이나 측근도 키우지 않았다. 처음부터 끝까지 단독 플레이였다. “몰려 다니는 사자가 아니라 혼자 사는 호랑이”라고 했다. 외톨이지만 그 때문에 곳곳에서 러브콜을 받았다. 그는 남을 칭찬하지 않는다. 면전에서 쓴소리도 예사로 한다. 걸핏하면 그만두겠다고 한다. 역설적으로 이것이 ‘김종인식 카리스마’를 만들었다. 두 대통령 구속 수감 사태에 대해 과감히 사과해 청년층 지지의 장애를 없앴다. 그가 당을 맡은 이후 국민의힘 내 막말도 줄었다.

▶그의 40년 정치 인생엔 실패도 많았다. 1988년 관악을에 출마해 이해찬 전 대표에게 졌다. 이후 한 번도 지역구 선거나 경선에 나서지 않았다. 1993년엔 동화은행 수뢰 사건으로 구속됐다. 박근혜·문재인을 도왔지만 선거 승리 후 밀려났다. 2017년 대선 땐 출마를 선언했다가 곧바로 접었다. 작년 총선에서도 참패했다.

▶김종인 전 비대위원장도 당연히 대통령 꿈이 있었다. 노태우 정부에서 차기 주자로 검토됐다는 얘기도 있었다. 하지만 마침내 그 꿈을 접은 것 같다. 그는 “여든 살 넘으면 덤으로 사는 것이다. 이제 자연인으로 돌아간다”고 했다. 김 전 위원장은 8일 박수를 받으며 물러났다. 국민의힘이 합리적이고 품위 있는 보수당으로 발전한다면 김종인의 업적으로 남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