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순 서울시장의 집무실을 찾았다가 엄청난 양의 서류 더미를 본 적이 있다. 어린이 키에 버금갈 정도 서류탑들이 집무실을 채우고 있었다. “일하다 보니 서류철이 계속 높아진다”고 했다. ‘일을 하려면 저렇게 쌓아 놓고는 못 할 텐데’라는 질문을 하려다 참았다. 20대 국회 개원 뒤 민주당 박주민 의원을 처음 봤다. 항상 큰 백팩을 매고 다녔다. “짬 나면 일을 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가방 안에 노트북과 서류 뭉치가 가득 들어 있었다. 박 의원의 백팩을 보면서 박 시장의 서류탑이 떠올랐다.

만물상 삽입

▶1973년생 서울법대 93학번 박주민 의원은 변호사 시절 세월호 현장 등을 면도 안 한 얼굴, 꾀죄죄한 옷차림으로 쫓아다녔다. ‘세월호 변호사’ ‘거지갑(甲)’ 별명을 얻었다. 국회의원이 돼서도 헝클어진 머리로 본회의장에 엎드려 쪽잠을 잘 때가 있었다. “밤새 법안 만드느라 못 씻었다”고 했다. 백남기 농민 빈소를 지키다 탁자 위에서 자는 모습도 보였다. 방송 연예 프로그램 등에서 ‘국회의원인데 얼굴은 노숙자’ ‘외모 자체가 성실과 워커홀릭’ 등 찬사를 받았다.

▶이런 별명이 후원금을 몰아 줬다. 40시간 만에 계좌 한도를 채우기도 했다. 재산은 ‘거지갑' 등급이 아니다. 2020년도 신고 재산이 11억4468만원이다. 아내도 변호사다. 명문 외고 출신이지만 알려지는 걸 그리 달가워하지 않는다고 한다. 한 고교 동기는 “후배들이 인사하면 ‘그래서요?’라고 반응했다”고 했다.

▶그는 재킷에 주렁주렁 배지를 달고 다녀 ‘박주렁’으로도 불린다. 세월호·여순 사건·제주 4·3 사건·위안부를 상징하는 배지를 달고 다닌다. 박 의원은 “유가족, 피해자분들이 직접 달아주신 것이어서 제 손으로 뗄 수 없다” “꼭 해결하겠다는 각오이자 다짐”이라고 했다. 20대 국회에서 법안을 315건을 발의해 최다 발의 랭킹에 이름을 올렸다. 약자를 위한 법에는 꼭 이름을 올렸다. 그 기사에 이런 댓글이 달렸다. “참 보여주기 정치는 잘한다.”

▶박 의원이 작년 7월 임대료를 5% 이상 못 올리게 하는 임대차 3법 통과를 앞두고 자기 소유 아파트 임대료를 9% 인상한 사실이 드러났다. 자기가 발의한 법이다. 법 통과 하루 전 법사위 회의에서 “법 적용을 예상하고 미리 월세를 높이려는 시도가 있을 것”이라고 했다. 자기가 그렇게 했으니 잘 알 수밖에 없다. 청년정의당 대표가 “거지갑 박주민은 어디 있느냐”고 했다. 내로남불과 위선은 조국씨를 비롯한 586 전유물인 줄 알았더니 그게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