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 알프스의 융프라우요흐역은 해발고도 3454m로 세계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다. 이 역은 얼큰한 한국 라면을 맛볼 수 있는 곳으로도 유명하다. 산악열차 왕복 탑승권을 산 한국인에겐 무료다. 라면 사랑이 유별난 한국인을 염두에 둔 미끼임이 분명한데, 연간 판매량 10만개 중 6만개를 한국인이 먹는다니 효과 만점이다. 몇 해 전부턴 마터호른에서도 한국 라면을 팔고 있다.

만물상 일러스트

▶한국인의 1인당 라면 소비량은 단연 세계 1위다. 세계라면협회가 조사했더니 한국인 한 명이 연간 70개 넘는 라면을 먹는다. 인도네시아가 50개로 2위, 이어 일본·중국·미국 순이다. 끓는 물에 수프만 넣으면 매운 감칠맛의 소고기 육수 맛을 내는 라면은 한국인의 솔 푸드다. 소설가 김훈은 산문집 ‘라면을 끓이며’에서 “배고픈 시절에 나타나” “경이로운 행복감을 싼값으로 대량 공급”했고 “그 맛의 놀라움은 장님의 눈뜸과도 같았고 ‘불의 발견’과 맞먹을 만했다”고 상찬했다.

▶많은 한국인이 라면 맛있게 끓이는 저마다의 비법을 갖고 있다. 김훈은 위의 책에서 물의 양은 550㎖가 아니라 700㎖여야 하고, 면과 분말 수프를 넣은 뒤 4분 30초가 아닌 3분만 끓인다고 썼다. 대파는 10개를 쓰되 밑동만 잘라 세로로 잘게 쪼개 놓았다가 라면이 2분쯤 끓었을 때 넣는다. 압권은 완성 시점인데, 풀어놓은 달걀 투하 후 한 번 젓고 뚜껑을 빨리 닫은 뒤 ’30초쯤' 기다렸다가 먹어야 한다.

▶세계 최초의 인스턴트 라면은 일본 기업 닛신식품이 1958년 선보인 치킨라멘이다. 면을 기름에 튀겨 건조하고 닭뼈 육수로 맛을 냈다. 우리나라에 처음 소개될 때도 닭국물 육수를 썼지만 입맛에 맞지 않았다. 삼양식품, 농심 등이 연구 끝에 지금처럼 소고기 육수로 맛을 낸 라면을 선보였다. 1991년부터 30년 1위 자리를 지키는 신라면은 국물을 개발할 때 설렁탕집, 냉면집 순례하며 온갖 다진 양념을 연구했다.

▶‘라면왕’ 신춘호 농심 회장이 별세했다. 처음 라면을 끓이는 사람도 맛있게 조리할 수 있게 하겠다며 제품 개발에 온 생애를 바친 ‘라면의 혁신가’였다. 농심라면, 안성탕면, 짜파게티, 신라면 등으로 한국인의 혀를 사로잡았다. 유언조차 “최고 품질로 세계 속의 농심으로 키우라”는 업무 지시였다. 1971년부터 세계시장 개척에 나섰고 100여 나라에서 한국식 매운맛의 영토를 넓혀 왔다. 농심 전체 매출의 40%인 1조1000억원이 해외에서 나온다. 국민의 입을 행복하게 하고 국부(國富)에도 기여한 진짜 사업보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