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여름방학 때 시골 외가에 가면 돌아오는 버스에 외할머니가 수박과 참외를 가득 담은 박스를 실어 주었다. 서울 시외버스 터미널에 도착해 주위를 두리번거리는 것이 요즘 식으로 하면 ‘배달앱’ 구동이었다. 그러면 아저씨들이 리어카를 끌고 다가와 택시 정류장까지 실어다주는 가격을 흥정했다.

▶크리스마스 전야, 국내 최대 배달앱 ‘배달의 민족’이 작동을 멈췄다. 오후 6시쯤부터 단 4시간여 먹통이 됐을 뿐인데 상인과 소비자 모두 비명을 질렀다. 수도권 거리 두기로 5인 이상 사적 모임이 금지된 상황에서 배달 주문에 기댔던 음식점들은 하필 가장 높은 매출을 올려야 할 시점에 참혹한 피해를 봤다. 망연자실한 어느 상인은 인터넷 카페에 “배달원이 오지 않는다. 손님에게 주문 취소하라 전화하고 그냥 내가 먹었다”는 글을 올렸다. 크리스마스에 산타가 아니라 배달원이 오지 않는 것을 걱정해야 하는 시대가 됐다.

▶배달앱은 이제 구글⋅애플 못지않은 혁신의 상징이다. 미국 최대 음식 배달 스타트업 ‘도어대시’는 미 증시 상장 첫날 주가가 공모가 대비 86% 오르는 대박을 쳤다. 중국 이민자 가정 출신의 창업주 토니 쉬는 중식당 알바를 뛰는 어머니 옆에서 접시 닦던 아이에서 일약 31억달러를 손에 쥔 청년 갑부로 변신했다. 이 회사에 6억8000만달러를 투자한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도 투자액 대비 17배 수익을 거뒀다.

▶국내에선 배민과 요기요 합병 추진 뉴스가 자동차 회사 M&A만큼이나 관심을 끈다. 네이버와 카카오, 은행권까지 너도나도 배달 시장에 뛰어들 태세다. 통계청 자료를 보면 이유가 분명히 드러난다. 국내 배달 시장 규모는 2017년 2조9600억원에서 지난해 9조7300억원으로 수직 상승했다. 올해는 코로나19로 인해 비대면 소비가 더 크게 늘었다. 한 모바일 빅데이터 업체가 지난해 8월부터 지난 8월까지 1년간 국내 배달앱 사용량을 분석한 결과, 월간 사용자 수가 지난해 1058만명에서 올해 1322만명으로 25%나 증가했다.

▶크리스마스 이브의 배민 사태가 ‘배달원 없는 배달’ 시대를 재촉할지도 모른다. 이미 드론과 자율주행 로봇을 이용한 배달 서비스가 준비되고 있다. 머신러닝으로 이세돌을 꺾은 인공지능(AI)은 지리 정보와 배달 동선뿐 아니라 교통사고 피하는 법까지 학습 중이다. 한강 둔치에서 “짜장면 시키신 분~”을 찾는 배달원 대신 드론이 눈앞에 물건을 가져다 놓는 세상이 오고 있다. 한강 잔디밭에서 손님을 찾아내는 배달앱 덕에 ‘백사장에서 바늘 찾기’라는 속담이 사라질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