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터팬’ ‘서유기’ 같은 판타지 소설이라 해서 만화 같은 상상력만 필요한 건 아니다. 상상 속 이야기일수록 정교한 현실이 버무려져야 더 그럴듯해진다. 크리스마스 시즌이 되면 산타클로스가 진짜라고 믿는 아이들을 위해 미 공군이 산타 위치 추적 이벤트를 벌이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올해는 여기에 코로나 팬데믹 변수가 더해졌다. 산타를 외국 방문객 취급한 우스개가 최근 소셜미디어에서 크게 유행했다. 산타클로스도 입국 후 2주간 자가 격리를 해야 하니 25일 도착하면 내년 1월 9일에나 아이들을 찾아올 것이란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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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가 코로나로 신음하고 있지만, 적어도 상상과 현실이 만나는 공간에서 산타는 희망을 주는 존재다. 호주 퀸즐랜드는 산타가 제 날짜에 오지 못할까 걱정하는 아이들을 위해 산타에 한해 자가 격리를 면제하는 승인서를 발급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산타가 비록 고령이지만 면역력을 갖췄다”는 권위 있는 진단을 내렸다. 아이들에겐 올해 선물을 받으려면 착한 일 외에 “거리 두기를 지켜야 한다”고 추가 조건을 걸었지만 이 또한 희망의 다른 표현이다.

▶그러나 상상을 배제한 현실에서 산타는 그 어느 때보다 어려운 시기를 보내고 있다. 벨기에에선 이달 초 산타가 코로나19에 감염된 줄도 모르고 요양원을 방문했다가 무려 75명을 감염시켰다. 입소자와 직원들이 마스크를 하지 않고 수퍼 전파자 산타와 기념촬영 한 것이 탈이었다. 당장 “산타 방문 이벤트는 어리석은 짓”이란 비난이 들끓었다. 산타 비즈니스도 호된 시절을 넘고 있다. 해마다 290만명이 찾는 핀란드 북부 라플란드의 산타 마을은 올해 고작 50만명이 다녀갔다. 이 지역 놀이공원인 산타파크에선 400명이던 산타가 36명으로 줄었다고 한다.

▶이런 현실을 아이들에게 숨긴다고 모를 리 없다. 미국 연방 우편서비스국은 해마다 가난한 아이들에게서 산타한테 받고 싶은 선물 목록 편지를 받아 소원을 들어주는 ‘산타 작전’을 한다. 올해는 부쩍 어른스러운 내용이 많아졌다고 한다. “우리 가족이 다시 행복해질 수 있게 아빠에게 직장을 선물해 주세요” 같은 편지를 읽다가 어른들이 눈물을 흘린다.

▶미국, 영국, 캐나다, 이스라엘 등이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백신 접종을 시작했다. 올해 이보다 더 큰 선물은 없을 것이다. 우리는 언제 백신을 맞게 될지 기약이 없다. 영국에 ‘크리스마스는 1년에 한 번밖에 안 온다’는 속담이 있다. 이런 크리스마스는 한 번으로 족하다. 내년엔 온 국민이 백신을 맞고서 산타를 기다렸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