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 탄핵을 앞둔 2016년 말 서울대 재학·졸업생 커뮤니티 사이트 ‘스누라이프’에 새누리당 의원들 휴대전화가 공개됐다. 탄핵 찬성을 압박하기 위해 의원들에게 전화를 돌리라는 뜻이었다. 글쓴이는 “탄핵만이 살 길”이라며 30시간을 들여 국회 홈페이지 등을 검색해 만들었다고 했다. 전화번호는 급속히 퍼져나갔다. 그맘때 스누라이프는 ‘최악의 동문상’도 만들어 우병우 민정수석을 1위로 뽑았고, 조국 교수는 “저희 학교 학생들이 뽑았다”고 자랑하며 인용했다. 몇 년 뒤 자신이 최악의 동문에 오를 것이라곤 상상조차 못했을 것이다.

▶며칠 전 스누라이프에 ‘박근혜 대통령님, 미안합니다’라는 글이 올라왔다. 문재인 정부와 비교하는 13가지 사유를 들며 박 전 대통령에게 “미안하다”고 했다. 글쓴이는 “두 집 살림 한다고 검찰총장 잘랐을 때 욕했는데 이번에 사찰한다고 검찰총장 찍어내는 거 보니 욕할 것도 아니었다. 미안합니다”로 글을 시작했다. “원전 때문에 ‘죽을래’라는 걸 보니 문체부 공무원 좌천시킨 건 정상 인사”라고 했다.

▶”최순실 딸을 욕했는데, 조국씨 아들딸의 서류 위조를 보니 아시안게임 금메달은 성실한 노력”이라고 했다. “국민은 집 사지 말라며 집값 올리는 거 보니 당시에 집 사라고 한 건 서민 위한 선견지명”이라고 했다. “사과하고 질문은 왜 안 받냐고 욕했는데 사과라도 하는 건 인품이 훌륭한 것 같다”고 했다. 그러면서 “박 정부가 최악이라고 욕해서 미안합니다. 그때는 이렇게까지 한 번도 경험 못한 세상이 올 줄은 몰랐습니다. 미안합니다”라고 글을 맺었다.

▶과거에도 대통령 임기가 중반을 지나면 ‘차라리 OOO이 나았다’는 개탄이 나오곤 했다. 이명박 대통령 때도 “노무현 때가 나았다”는 말이 있었고 박근혜 대통령 때도 “차라리 이명박”이라고 했었다. 5년 단임 대통령제의 한계였다. 그래서 퇴임을 앞둔 대통령의 측근들은 “우리 대통령이 그리워지는 날이 올 것”이라곤 했다. 언젠가 명예 회복의 날이 온다는 얘기였다.

▶문 대통령은 얼마전까지 노무현 전 대통령과 비교되곤 했다. ‘노무현은 한미 FTA 등 나라에 꼭 필요한 일은 했는데 문 대통령은 뭐하냐’는 식이었다. 그래서 문 대통령이 스스로 못난 모습을 보여 노무현을 명예 회복시켰다는 평가도 있었다. 이제는 탄핵당한 박근혜 전 대통령까지 명예 회복시켜줄 모양이다. 4년 전 촛불 집회에선 “박근혜를 뽑아 자식에게 미안하다”는 말이 나왔는데 이제 “박 전 대통령에게 미안하다”고 한다. ‘촛불’을 등에 업은 문 대통령에 대한 국민 환호는 어느새 “경험 못한 최악 정부”라는 말에 덮였다. 되풀이되는 역사가 두려울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