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조선디자인랩·Midjourney

올해 수능시험은 칸트로 시작해 칸트로 끝났다. 이 독일 철학자는 1교시 국어, 3교시 영어, 4교시 사회탐구(생활과윤리)에 등장해 학생들을 괴롭혔다. 수능 당일 저녁 수험생 온라인 커뮤니티엔 “2026 수능=칸트랑 데이트” “칸트는 알까? 본인이 수세기 지나 한 동아시아 국가의 청년들에게 고통을 주고 있는 것을” 같은 후기들이 올라왔다.

‘웃픈’ 해프닝인가 했는데 칸트가 지난주 논란의 주인공으로 재조명됐다. 이충형 포스텍 인문사회학부 교수가 칸트의 인격 동일성에 대한 지문을 읽고 푸는 국어 17번 문항에 “정답이 없다”는 의견을 밝히면서다. 철학을 가르치는 이 교수는 답이 없는 이유를 A4 용지 8장에 걸쳐 설명했다. 다른 철학과 교수들 생각이 궁금해 여러 명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설명을 듣지는 못했다. 다들 수능이라는 예민한 시험에 엮이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데 다음 날 아침, 전화를 돌린 이들 중 서울의 한 철학과 A 교수에게 ‘2026학년도 수능 국어 17번에 관하여’라는 제목의 글을 받았다. 그는 “지문과 문제에 비약이 있다”며 A4 용지 5장에 걸쳐 이유를 설명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문에 나온 칸트 이전의 견해와 문제의 보기를 이해했다면 충분히 풀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기자는 이 교수와 A 교수가 서로 다른 이유를 들어 설명한 국어 17번 문항의 불완전함을 정확히 이해하고 싶었다. 1시간을 투자해 두 글을 여러 차례 읽었지만 부끄럽게도 실패했다. 대신 두 교수에게 공통점 하나를 발견했다. 국어 17번 문항을 분석하며 교육의 목적, 수능의 본질에 대해 근본적인 의문을 품었다는 사실이다.

이 교수는 평가원이 제시한 답을 얻으려면 깊은 사고 없이 단편적으로 일부 문구의 유사성만 가지고 풀어야 한다고 비판했다. “피상적 유사성을 인간보다 빠르게 찾아내는 인공지능이 있는 시대다. 수능이 피상적 유사성과 실제로는 오류인 피상적 사고 추론을 통해 문제를 풀라고 요구하는 건 교육의 목적에 어긋난다.”

A 교수 또한 이렇게 지적했다. “문제 푸는 요령이 있으면 지문을 깊이 읽지 않고도 정답을 찾았을 겁니다. 대입 시험(수능)을 통해 다음 세대를 어떤 사람으로 길러내려 하는지 고민해 볼 필요가 있겠습니다. 시험이 요령을 숙달한 사람을 좋게 평가하게 된다면, 훌륭한 인재는 결국 요령을 잘 숙달한 사람이 될 것입니다.”

지난 25일 평가원은 국어 17번 문항을 포함해 이의신청이 접수된 문항 모두에 대해 이상이 없다고 발표하며 논란을 종결시켰다. 그러나 칸트가 대한민국 수능의 맹점을 지목한 질문들은 잦아들지 않을 것이다. 미래 인재 양성의 지표로서 오지선다형 수능이 과연 적절한가? AI 시대를 앞둔 평가원은 ‘수능 이상 없음’이라는 답변이 통하지 않을 미래에 대비돼 있는가? 과연 1등급짜리 해답을 내놓을 수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