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일 오후 강원도 강릉시 안반데기 배추밭, 농부 김시갑씨가 배춧속을 열어 가뭄으로 속이 누렇게 변한 배추를 보여주고 있다. /최하연 기자

“요즘엔 샤워할 때도 죄책감이 들어요.” “빨래는 모아서 시댁이나 친정집에서 합니다.”

지난달 31일 강원 강릉 시민들은 가뭄과 힘겹게 싸우고 있었다. 여름 배추 산지인 안반데기에서 만난 김시갑(72)씨는 “두 달 넘게 애지중지 키운 배추가 누렇게 말라 전부 내다 버려야 할 판”이라며 “영양제를 줘도 소용이 없고 속이 탄다”고 했다. 마을 이장들은 집집마다 찾아다니며 수도 계량기를 잠가 달라고 애걸복걸했다. 홍옥표(89)씨는 “수돗물이 졸졸 나오는 걸 보니 6·25 때 피란 간 시절이 생각난다”고 했다. 한 식당 주인은 “시민으로서 손 놓고 있자니 마음이 불편하다”며 저녁 영업을 접었다.

그런데 가뭄 대책을 진두지휘해야 할 김홍규 강릉시장은 달랐다. 지난달 30일 강릉을 찾은 이재명 대통령 앞에서 동문서답을 했다. 이 대통령이 강릉시가 요구한 예산 중 원수(原水) 확보 비용이 얼마냐고 물었지만 김 시장은 원수를 정수하는 연곡정수장 확장 비용만 얘기했다. 처음에는 필요한 예산이 1000억원이라고 했다가 나중엔 500억원이라고 했다.

이 대통령이 “비상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고 하자 “9월엔 비가 올 거라 굳게 믿는다. 작년 9월 한 달에 380㎜가 온 것으로 알고 있다”고도 했다. 이 대통령은 “하나님을 믿으면 안 된다. 사람 목숨을 실험에 맡길 수는 없다”고 질책했다. 강릉 시민들은 “우리가 왜 부끄러워해야 하느냐”고 하소연했다. 포남동에서 만난 최모씨는 “작년 가뭄 때도 시장은 시민들에게 물 절약만 강요했는데 올해도 마찬가지”라며 “시는 도대체 뭐하느냐. 뒷짐지고 하늘만 보느냐”고 했다.

강릉시가 짓는 연곡정수장은 연곡천에서 원수를 끌어오기 때문에 별도로 원수를 확보하는 데 예산이 들지 않지만 김 시장은 이를 정확하게 설명하지 못했다. 작년 9월 강릉에는 400㎜가 넘는 비가 내렸지만 김 시장은 이 수치도 착각해 대통령 앞에서 380㎜라고 했다. 강릉 시민들이 극심한 가뭄에 시달리는 사이 근처 속초 시민들은 물을 뿌리며 즐기는 ‘워터밤’ 축제를 열었다. 속초는 2021년 쌍천에 ‘지하댐’을 세워 고질적인 가뭄을 극복한 반면 강릉은 최근에야 설계에 들어갔다.

정부는 지난달 30일 강릉에 재난 사태를 선포했다. 가뭄 같은 자연재해로 재난 사태를 선포한 건 강릉이 처음이다. 지방자치단체가 감당할 수 없다고 판단해 중앙정부가 직접 개입한 것이다. 이쯤 되면 강릉 가뭄은 자연재해가 아니라 무능한 행정이 낳은 예견된 인재다. 강릉시가 하늘만 쳐다볼 때 시민들은 온갖 불편 속에 고통받고 있다.

강릉은 지금 기적을 바라는 게 아니다. 생명줄이 걸린 단수 위기 앞에서 시장이 손 놓고 요행을 바라나. 시민들은 낙관이 아니라 준비, 믿음이 아니라 책임을 요구하고 있다. 하늘을 믿는다는 말로는 위기를 막을 수 없고 행정 구멍만 드러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