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방배동에서 지난 31일 만난 성악가 김충식(48)씨는 배달용 보온배낭을 메고 있었다. “식당에서 픽업한 음식을 여기 넣어 배달하면 덜 식는다”고 했다. 주로 저녁식사 시간대에 일하는데 한 달에 70만원을 번다. 그의 주수입원이다.

2011년 오사카에서 주세페 베르디의 작품 '일 트로바토레'를 공연 중인 김충식 테너. 이태리와 독일을 주 무대로 활동하던 그는 코로나 여파로 현지 에이전트가 문을 닫으면서 한국으로 귀국, 공연 시장이 다시 열릴 때까지 배달 일을 하며 지내고 있다./김충식씨 제공

이탈리아와 독일을 무대로 왕성하게 활동했던 그는 작년 3월 현지 에이전트가 코로나 여파로 문을 닫자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의 스승은 전설적 성악가 알도 베르토치(1915~2004)다. 우상이던 베르토치를 찾아간 건 스물다섯 살 때다. 4개월 매달려 제자가 됐다. 음대 근처도 가본 적 없던 그는 1998년부터 2004년까지 베르토치에게 배웠고, 스승이 작고한 후 밀라노시립음악원에 들어가 학위를 땄다. 2007년 부세토 베르디 국제 콩쿠르에서 3위로 입상하며 승승장구했다.

그러나 한국 돌아와선 대입(大入) 입시 레슨 하나 구하기가 어려웠다. 국내 음대 엘리트 코스를 밟지 않은 탓이다. 결국 작년 9월 700만원짜리 중고차 한 대를 사서 쿠팡 택배 배달을 시작했다. 한 달에 150만원 정도 손에 쥐었지만 이 생활은 오래가지 못했다. 무거운 짐 내리다가 허리를 다쳐 8개월 만에 손을 뗐다. 중고차는 500만원에 처분했고, 올 5월부턴 동네 반경 5㎞ 안에서 도보로 음식을 배달하고 있다.

그는 현재 국내 오페라단 ‘이 마에스트리’ 소속이다. 그의 소식을 접한 양재무 단장의 권유로 올 6월 정기 연주회부터 함께 무대에 섰다. 단원 110명 전부가 남성인 이 오페라단엔 요즘 김씨 같은 사람이 많아졌다. 코로나 이후 공연이 줄줄이 취소되면서 공연 수입으로만 생계를 꾸려왔던 단원들이 오페라단에 적(籍)을 두고 생업으론 택배나 배달 일을 하고 있다.

단원 가운데 김씨를 비롯한 46명은 한국에서의 벌이를 잠시 접어두고 오는 10일부터 공연 연습에 들어간다. 동유럽 5국 초청으로 이달 29일부터 2주간 체코, 오스트리아, 슬로바키아, 헝가리, 세르비아를 차례로 돈다. 코로나 이후 첫 해외공연이다. 메인 무대는 2019년 부다페스트 유람선 침몰사고로 숨진 한국인을 추모하는 공연이다. 김소월의 시 ‘초혼(招魂)’을 각색한 무대가 부다페스트 공연장에 올라 한인 희생자의 넋을 기릴 것이다.

김씨는 이번 공연이 끝나면 베를린으로 넘어가 한 달간 머물 예정이다. 코로나로 문 닫았던 극장들이 속속 공연 재개를 준비한다는 소식을 듣고서다. 배달 일하며 번 돈이 독일에서 꼭 한 달 생활할 만큼 모였다고 한다. 그는 “체류 기간도 짧고 그사이 오디션 합격을 장담할 순 없지만 그래도 도전해보려 한다”고 했다. 그의 휴대전화에서 ‘신규 배달’ 알림이 울렸다. 그는 코로나 시대를 버티려면 배달을 가야 한다며 일어섰다.

작년 6월 창단 15주년 정기 연주회를 앞두고 연습 중인 이 마에스트리 단원들. 2006년 창단한 이 오페라단은 남성 오페라 가수만 110명으로 구성돼있다. 코로나 여파로 올해 공연이 줄줄이 취소되면서 생활고에 시달리던 일부 단원들은 택배 배달을 하며 생계를 꾸려가고 있다./이 마에스트리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