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일 우크라이나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과 화상으로 마주한 한국 국회의원은 50여 명 남짓했다. 전쟁 중인 나라의 현직 대통령이 직접 참상을 알리고 도움을 요청하는 자리에 300명 의원 중 5분의 1도 참석하지 않아 좌석이 텅텅 비었다. 박병석 국회의장 등 국회의장단도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취재진 사이에서 “왜 이렇게 참석자가 적나” “우크라이나, 국제사회 보기 민망하다”는 수근거림이 나왔다.

현장의 분위기는 평상시 소규모 세미나 같았다. 장소는 국회 본회의장보다 격이 떨어지는 국회도서관 대강당이었다. 여야 의원들은 젤렌스키 대통령의 연설 전후로 강단에 올라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해 짧은 발표를 했는데, 일부는 의원 개인 홍보성 발언을 해 눈총을 샀다.

가장 낯 뜨거웠던 순간은 젤렌스키 대통령이 연설할 때였다. 일부 의원은 의자 뒤에 늘어지게 기대앉아 연설을 들었다. 고개를 숙인 채 휴대전화를 만지작거리거나 꾸벅꾸벅 조는 듯한 이들도 있었다. 의원들은 연설이 끝나자 자리에 앉은 채 박수를 쳤다. 대선 기간 때 여야 의원들은 너도나도 우크라이나 아픔에 동참한다고 했지만, 이날은 그런 열의를 찾아보기 어려웠다.

앞서 젤렌스키 대통령이 미국·영국·일본 등 23국 의회에서 연설했을 때는 어김없이 기립 박수가 나왔다. 미국에선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을 비롯해 의원들이 의회 강당을 가득 메웠다. 영국 의회는 외국 정상으로는 처음으로 젤렌스키 대통령에게 하원 회의장을 내줘 연설하도록 했고, 이 자리에 보리스 존슨 총리도 참석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이 지난 11일 대한민국 국회에서 듬성듬성 자리에 앉은 더불어민주당·국민의힘·정의당 등 여야 의원들을 상대로 연설한 직후 인터넷에 올라온 사진들. 미국, 영국 등 다른 나라 의원들은 젤레스키 화상 연설을 듣고자 의회장을 가득 메웠고, 그의 연설이 끝난 뒤에는 모두가 기립해 뜨거운 지지의 박수를 보냈다. 연설 내내 서서 경청하는 의원들도 많았다. 하지만 러시아의 침공을 받아 전쟁 중인 2022년의 우크라이나처럼 1950년 전쟁의 참화를 겪은 한국의 국회에선 우크라이나를 향한 기립 박수도 뭐도 없었다.

이날 연설 후 인터넷에는 빈자리를 찾아볼 수 없었던 외국 의회와 썰렁한 한국 국회의 모습을 비교하는 사진이 올라왔다. 전쟁 참화를 겪은 한국은 그 어느 나라보다 더 젤렌스키 대통령의 호소에 귀를 기울였어야 하는 것 아닌가. 젤렌스키 대통령의 이날 연설 한 대목에 고개를 들 수 없다. “한국은 1950년대 전쟁을 겪었습니다. 수많은 민간인이 목숨을 잃었지만, 이겨냈습니다. 그때 국제사회가 많은 도움을 주지 않았습니까. 이번에는 한국과 국제사회가 우리를 도와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