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김도원 화백

막도장 하나 새기러 삼척 시장에 나갔다. 요즘 누가 도장을 쓰랴 생각하겠지만 학교에서는 도장 찍는 것이 사인하는 것보다 편할 때가 더러 있다. 오가다 봐둔 도장 가게가 있었다.

가게는 어른이 반듯하게 누워 팔을 옆으로 펼치면 꽉 찰 크기였다. 가게 안에 할아버지가 세 분 계신다. 한 분은 사장님이고 두 분은 친구 같다. 초록색 도장을 골랐더니, 옆의 분들이 추임새를 넣는다. 도장 잘 골랐다고, 여기가 강원도 삼척에서 도장 가장 잘 새긴다고 말이다. 도장이 완성될 동안 시장을 둘러봤다. 마침 장날이었다.

어느 가게 앞에 까만 가마솥이 걸려있다. 주인 아주머니가 솥뚜껑을 열었는데 펄펄 끓는 솥에 실한 옥수수들이 가득하다. 아주머니는 이 자리에서 30년 동안 옥수수를 삶았는데 삼척에서 자기 옥수수를 모르면 ‘간첩’이란다. 건지리에서 방금 따 온 옥수수라면서 “강냉이, 아무나 삶는 거 아니야” 하신다. 아주머니가 멋져서 옥수수 세 자루를 샀다.

한 아주머니는 채반에 자두를 펼쳐 놓았다. 빨갛다 못해 까만색이 감도는 큼직한 자두였다. “어디에서 온 거예요? 물으니 “아침에 미로면에서 따 왔어. 다들 우리 자두 맛있다 해요. 달고도 셔.” 이 말을 듣는 순간 입에 침이 가득 고였다. 한 소쿠리 샀다.

부리나케 집으로 왔다. 건지리 옥수수와 미로 자두 맛이 궁금했다. 대형 마트 물건들은 고장의 냄새를 지운 채 포장재에 갇혀 진열대에 누워 있는 듯하다. 시장에서 만난 농산물은 그 느낌이 다르다. 자두에는 미로의 짱짱한 햇볕이 아로새겨져 있을 것 같다. 옥수수 알맹이는 오십천(五十川)의 물을 머금고 있을 것 같다. 옥수수를 찌는 사람의 자부심, 자두를 기른 이의 애정, 이들의 순정한 눈빛은 덤이었다.

특별하다는 것이 다른 것과 구별되는 고유한 속성이라고 한다면 나는 고유한 자두와 옥수수를 산 셈이다. 참, 자두와 옥수수를 물색없이 좋아하다가, 도장 세계의 일인자 할아버지가 판 특별한 초록 도장을 잊고 왔다. 도장 찾으러 얼른 시장에 가야겠다.

서현숙, 교사, '소년을 읽다'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