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애란 산문집 ‘잊기 좋은 이름’에서 잊기 힘든 문장을 봤다. “나는 우리 삶에 생존만 있는 게 아니라 사치와 허영과 아름다움이 깃드는 게 좋았다. 때론 그렇게 반짝이는 것들을 밟고 건너야만 하는 시절도 있는 법이니까.” 작가의 어머니는 국숫집을 하며 세 딸을 키웠으나 번 돈을 모조리 생존에만 쏟아붓지 않았다. 딸들에게는 피아노와 책을 사줬고 자신을 위한 옷과 분에도 지갑을 열었다. 책에서 유독 이 대목이 마음에 와닿은 이유는 내게도 그런 엄마가 있기 때문이다.
엄마는 바쁜 아침에도 언니와 내 머리를 정성껏 땋아 어제와는 다른 리본을 달아주었다. 아빠의 월급날 우리 자매를 서점에 데려가 마음껏 책을 고르게 해주었다. 좁은 집에 피아노를 들이고 김현식의 ‘내 사랑 내 곁에’를 쳐달라고 딸들에게 청했다. 금방 녹슬어버릴 액세서리를 사서 몇 안 되는 귀금속과 함께 소중히 보석함에 넣어두었다. 내 엄마의 사치와 허영과 아름다움이란 아마도 그런 것이었을 터다. 그 시절 언니와 나는 엄마가 집을 비우는 틈을 타 엄마의 옷장과 화장대 서랍을 자주 열어봤다. 브로치와 망사로 된 스카프, 부드러운 털로 뒤덮인 코트 같은 것을 만지고 걸쳐보며 놀거나, 근사한 펜이 나오면 몰래 가져가 쓰기도 했다. 엄마가 예쁜 게 뭔지 아는 사람이라 생각했고 그건 내내 우리의 자랑이었다.
언니와 내가 더 이상 엄마의 옷장이 궁금하지 않은 중고생이 되는 동안 엄마의 세월은 더욱 가혹해졌다. 그러나 그 세월을 통과하는 와중에도 엄마는 퇴근길에 가끔 새 옷을 사왔다. 나는 낯선 옷을 입고 “내 쫌 멋쟁이제?” 하며 웃는 엄마를 평소보다 조금 더 사랑하곤 했다.
내가 처음 취직했을 때 서울에 놀러 온 엄마는 신세계 백화점 본점에 데려가 달라고 했다. 망설임 없이 샤넬 매장으로 들어가 립스틱을 골랐다. 나는 갓 발급받은 신용카드로 그것을 결제했다. 굳이 선물 포장까지 요청해 꽃 장식 달린 쇼핑백을 엄마에게 내밀었다. 사치와 허영과 아름다움을 내 손으로 선사할 수 있어 좋은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