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내 비를 맞으며 촬영을 쏘다녔는데 벌써 서늘한 아침이다. 공기가 차가워지면 떠오르는 송년의 음악이 있다. 바로 헨델의 ‘메시아’다.
헨델은 당대의 아이돌 스타 같은 존재였다. 같은 독일 출신인 바흐가 흠모할 정도로 재능이 뛰어났다. 영국으로 이직한 뒤에는 왕실 뱃놀이 음악인 ‘수상음악’ 시리즈를 만들어 성공했다. 그랬던 헨델도 캐스팅한 가수들의 변덕과 카스트라토들의 높은 출연료 때문에 재정난에 시달리는 시기가 있었다고 한다. 그를 수렁에서 구해준 작품이 바로 오라토리오 ‘메시아’다. 우리 귀에 익숙한 “할렐루야~”라는 부분에선 영국 왕이 벌떡 기립하기까지 했으니 흥행은 따놓은 당상. 이로써 헨델은 재정난에서 탈출해 스타로 우뚝 섰다. 이 모든 300여 년 전 일이 남일 같지 않다. 캐스팅과 예산의 압박, 예측 불가능한 흥망성쇠의 원리까지 무대를 둘러싼 방송쟁이들의 팔자는 예나 지금이나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다.
돌파구가 전혀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오라토리오라는 종교 음악으로 과감히 장르를 바꾸고 가성비 좋은 제작 방식을 택해 재능을 극대화한 역작을 내놓은 헨델. 위기의 상황에서 강력한 설루션을 도출한 그의 행보가 놀랍다.
얼마 전 ‘노는언니’ 녹화장에서 출연자들이 주고받는 신기한 대화를 들었다. 컨디션이 좋다고 생각되는 날일 수록 패배할 확률이 높고, 어딘가 몸이 안 좋거나 상황이 좋지 않을 때 우승한 경우가 많다는 것이었다. 오히려 위기 상황에서 현실을 직시하고 침착하게 승부에 집중할 수 있었다고 한다. 고난이 우리에게 안겨주는 의외의 효과일지도 모른다.
고난이 잇따르는 올 한 해, 아마도 헨델이 지금 내 앞에 앉아 있다면 제작자의 고충과 조언을 고스란히 전해줄 것만 같다. 수백 년 시대를 관통하는 연출가들의 롤러코스터 팔자에서 묘하게 위로받는 가을, 고난 속에서 역작을 만들어낸 그의 선례가 나의 삶에도 꼭 포개질 수 있기를.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