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때 나를 가르쳤던(3년 내내 담임을 맡았던) J 선생님은 알루미늄 카본 재질의 선수용 양궁 화살로 학생들 종아리를 ‘즐겨’ 때리던 분이셨다(내가 다녔던 중학교에 유명한 양궁부가 있었다). J 선생님의 담당 과목은 수학. ‘수포자’라는 단어가 아예 없던 시절부터 선제적으로 그 길을 걸어갔던 나와 내 친구들은 수학 시간마다 칠판 앞으로 불려 나가 종아리를 맞곤 했는데, 그때마다 붕붕 말벌 날아오르는 소리가 났다(양궁 화살이 공기를 가를 때 그런 소리가 났다. 양궁 화살은 잘 부러지지도 않았다). 수학이 들은 날엔 거의 빠짐없이 맞았고, 어떤 날은 종례 시간에 맞은 데를 또 맞았다.
묘했던 것은 우리를 때리던 J 선생님의 표정이었다. 선생님은 우리를 때리면서 계속 히죽히죽 웃으셨는데, 그게 좀 섬뜩했다.
“와, 저거 완전 사이코 아니냐?”
“야, 난 담임이 웃길래 좀 봐주는 줄 알았어.”
우리는 하교 때마다 그렇게 투덜거리면서 함께 절뚝거렸다.
그건 좀 이상한 일이긴 했다. 당시엔 학교의 거의 모든 선생님이 수업 시간마다 학생들을 때렸는데(아아, 아직도 그 복도가 선명하게 기억난다. 영어 단어를 외우지 못해 교실에서 쫓겨나 복도에 무릎을 꿇고 있었는데, 옆 반에서도, 그 옆 반에서도 ‘퍽퍽퍽’ 소리가 들려왔던 오후. 아, 다 맞고 있구나. 그 소리가 내게 위안을 주었다), 그 표정과 목소리 톤은 모두 비슷했다. 말하자면 ‘몹시 화남’. 너희가 나를 화나게 해서 때리는 것이다, 고로 잘못은 너희에게 있다… 그건 어린 우리에게 꽤 설득력 있는 인과이자 태도였다(그래서 늘 반사적으로 선생님들의 심기부터 살폈다). 하지만 J 선생님은 그런 게 없었다. 표정은 언제나 인자한 쌀집 아저씨 같은데, 기분도 꽤 좋아 보였는데, 매는 매서웠다. 그래서 더 원인도 없고, 이유도 없는 체벌처럼 느껴졌다.
문제는 J 선생님이 아버지의 친구였다는 사실이다. 아버지와 같은 친목회 회원. 그 당시 친목회는 돼지갈비집이나 중국집 같은 곳에서 1차를 하고 2차는 꼭 회원 집 중 한 곳으로 몰려가 화투를 치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는데, 그래서 J선생님은 몇 번 우리 집에 오기도 하셨다. 나는 그 옆에서 재떨이를 비우거나 안줏거리 나르는 심부름을 해야만 했다. J 선생님은 나를 가리키며 “쟤가 그렇게 수학을 잘해”라고 말한 후 혼자 껄껄 웃곤 하셨는데, 그 농담에 아버지나 다른 친구 분들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나는 그 어색한 공기가 견디기 어려웠다.
후에, 그러니까 내가 대학에 입학한 후, 더 이상 J 선생님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을 무렵, 슬쩍 물어본 적이 있었다(그때까지도 아버지의 친목회는 계속 되고 있었다).
“어우, 선생님. 그땐 정말 무서웠어요. 선생님은 늘 웃으면서 우리를 때리니….”
그러자 J 선생님에게선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야, 내가 왜 너희들 때리면서 스트레스까지 받아야 하냐?”
스트레스 조절을 위해서 일부러 웃으며 우리를 때렸다는 말씀. 나는 거기에서 그만 말문을 닫고 말았다.
J 선생님은 2009년 가을에 돌아가셨다.
나는 그 소식을 뒤늦게 아버지에게 전해 들었다. 아버지는 거기에 이런 말도 덧붙였다.
“걔가 정년퇴직하고 하루도 빠짐없이 등산을 했거든. 술 담배도 일절 안 하고.”
나는 묵묵히 그 말을 듣고만 있었다.
“그래서 친구들 사이에선 재미가 좀 없었어. 지나치게 자기 몸만 생각한다고….”
J 선생님은 일흔이 되기 전에 죽었다.
유머에 대해서 이야기하려는 사람은 필연적으로 먼저 죽음에 대해 말할 수밖에 없다. 인간은 누구나 죽는다. 한계가 명확하고, 결함이 있다. 그 한계와 결함에서 비로소 유머는 태어난다(그래서 AI는 우리를 웃기지 못한다). 인간은 모두 허술하고 어딘가 좀 모자라다. 대부분 자신이 꽤 복잡하고 심각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살지만, 실상은 정반대다. 유머는 그걸 인식하는 데서부터 시작된다. 그리고 또 하나. 웃음은 유머의 충분조건이지 필요조건은 아니다. 어떤 웃음은 유머와 상관없이 기계적인 관습으로 튀어나온다. 그건 타인과 무관한, 타인을 배제한 웃음이다. 그 웃음은 타인을 두렵게 할 뿐이다. J 선생님은 그걸 인식하지 못했을 뿐이다.
뒤늦게나마 J 선생님의 명복을 빌어본다.